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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2회] “동료 법관 정신질환자로 몰지 않았다” 前인사총괄심의관의 해명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2회] “동료 법관 정신질환자로 몰지 않았다” 前인사총괄심의관의 해명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19-12-14 03:17
업데이트 2019-12-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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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51차 공판 지상중계

“재판장님, 신문하시기 전에 진행과 관련해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신청한 비공개 증인신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사 실무자로서 이 법정에서 법관들의 인사 비밀이 이야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공개 요청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재판장이 불허하신 점을 조서에 남겨줬으면 하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51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연학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증인선서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을 지낸 김 부장판사는 ‘물의야기 법관’을 분류된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사실에 관여한 것으로 지목됐다. 특히 판사 블랙리스트라고도 불린 물의야기 법관들에 대한 설명을 하다 보면 개별 법관들의 부적절한 내용들이나 인사 관련 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며 비공개를 요청한 것이다. 앞서 두 차례 법정에 나왔던 노재호 전 인사심의관(현 서울남부지법 판사)도 비공개 심리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노 판사 때와 마찬가지로 김 부장판사에게도 “증인신문 절차를 비공개로 할 사유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도 김 부장판사에게 증언을 해도 좋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놓인 적이 있다. 법원과 다른 법관의 판결에 비판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낸 특정 법관을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몰아가 물의야기 법관에 이름을 두고 인사상 불이익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검찰은 김 부장판사가 2015년 4월 당시 인천지법에 근무했던 A부장판사의 동의를 받지 않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A부장판사의 상태를 알려 정신감정을 요청했다고 공소사실에 기재했다. 특히 그가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불안장애 치료를 위한 약물인 ‘리튬’을 복용한 사실이 없는데도 이를 전달해 교수로부터 “정신과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소견을 전달받아 윗선에 보고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며 적극 부인했다.

●사법부 비판 잦아 물의야기 법관?…前인사총괄심의관 “근무평정 때문” 반박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A부장판사를 인사조치 대상자인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한 이유를 물으며 이 같은 공소사실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근무 평정 때문에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다”고 말했다. 당시 A부장판사에게 걱정스러운 상황들이 이어졌고 인천지법 동료 법관이나 직원들에게서도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구체적인 상황들을 설명했다. 김 부장판사는 긴 설명 중 갑자기 “증언 도중에 죄송하지만 이 재판을 비공개로 해주십사 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 때문”이라면서 “구체적인 법관 인사 상황에서 증인의 의무이긴 하지만 말씀을 드려야 해 증인으로서 대단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일단 질문을 하셨고 사실관계를 밝히려면 얘기를 안 할 수 없으므로 말하겠다”며 다시 증언을 이어갔다. 2015년 4월 A부장판사와 인천지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매우 자세한 설명이 계속됐다.

김 부장판사는 A부장판사가 인천지법에서 여러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다가 재판이 열리는 날 무단결근 한 것이 물의야기 법관이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A부장판사가 6건의 판결 선고와 49건의 재판 진행이 예정돼 있는 날 법원의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뒤에도 A부장판사는 신체 고통을 호소하는 등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다고 했다.

인사총괄심의관실은 A부장판사가 결근한 날 인천지법 직원에게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AOO 부장판사 관련 특이사항 보고’ 문건을 작성했다. 김 부장판사는 “제가 작성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내용을 보면 아마 제가 하지 않았을까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뒤 진정성립 과정에서 “이 문서의 작성자를 저로 해도 문제 없다”고 밝혔다.

보고서에는 ‘정신질환 가능성 있음. 본인 스스로 조울증 있다고 말한 바 있음’, ‘OO의대 정신과 전문의 통해 확인 중’ 등의 내용이 적혔다. 당시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A부장판사의 상황을 보고하며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겠다는 뜻으로 문건에 이 같이 적었다고 김 부장판사는 말했다. 검찰은 “정신과 전문의 통해 확인하는 것을 A부장판사에게 동의를 받았느냐”고 물었고, 김 부장판사는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A부장판사 외에도 이처럼 정신과 전문의에게 일반적인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매우 논란이 됐던 정신과 전문의 조언을 듣는 과정에 대해서도 긴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이 전문의는 김 부장판사의 ‘친한 선배’ 강모 교수였다.

●“동료 판사 정신병자로 몰았다는 보도 당황” 적극 반박

“통화 내용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보고서에 나와있는 대로 A부장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니 ‘그 정도면 전에 치료를 받거나 했을 수 있는데 그런 것 없느냐’고 선배가 물어서 ‘제가 확인 후 다시 알려주겠다’고 하고 일단 전화를 끊고 자료를 확인해보니 근무 평정에 ‘불안장애’라는 기재가 돼 있어서 종전에 불안장애가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김 부장판사)

“강 교수가 증인에게 복용한 약의 종류를 알아보라고 해서 증인이 알아보고 리튬이라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검사)

“그렇게 말한 사실이 없습니다.” (김 부장판사)

“강 교수는 검찰 조사 시에 그것(A부장판사의 행동 등 상황) 만으로는 알 수 없어서 복용하는 약을 물어봐서 증인이 리튬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검사)

“제가 그에 대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김 부장판사)

이 때부터 목소리가 더욱 단호해진 김 부장판사는 “어떻게 확인을 했다는 건가“ 물은 검찰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검찰 조사) 직후에 제가 A부장판사를 정신병자로 몰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강 교수가 전화가 와 본인도 황당하고 통화하고 싶다, 도저히 이 보도를 보니 화를 못 참겠어서 통화를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리튬은 본인이 한 이야긴데 제가 한 이야기라고 나와서 본인이 화가 났다고 합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김 부장판사가 강 교수에게 먼저 A부장판사가 리튬을 복용하고 있다고 기재돼 있는데 김 부장판사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방금 리튬이란 말 자체를 강 교수가 스스로 했다는 취지입니까?” (검사)

“그렇습니다. 저에 대한 참고인 조사 때인데 제가 리튬이란 거는 검사님께서 말씀하시니까 ‘건전지 얘기는 들어봤지, 제가 이건 처음 듣는다’고 말했고, 검사님이 강 교수가 리튬이라고 말했다고 하셔서 저도 평정에 불안장애라고 하니 어딘가 기재돼 있으면 얘기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랬던 겁니다. 정신병자로 몰았다는 것에 저는 너무 당황하고 놀랐고 강 교수도 마찬가지여서 통화 결과 그건 강 교수가 한 말인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김 부장판사)

김 부장판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당시에도 당황했지만 오늘 증인신문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니 과연 일반인이 리튬을 이야기하는 게 가능한 건가… 누가 저에게 다른 사람이 어떤 약을 먹고 있다고 하면 제품명을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평정이나 어디 기재돼 있다면 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제품명을 기재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누가 당연히 소화제를 먹었다고 하고 제품명인 훼스탈을 먹었다고 하지, 엊그제 찾아보니 훼스탈 성분은 시메티콘이던데 ‘시메티콘을 먹는다’고 하진 않아 (제가 먼저 리튬을 언급했다는 것은) 상정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시 A부장판사는 물의야기 법관으로 인사조치 대상이 됐지만 2016년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는 전보조치가 되지 않았다. 그 전해 인천지법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다시 인사조치 대상이 되면 A부장판사 자신이나 주변에서 인사 불이익이라고 오해할 수 있어서 인사조치를 보류했다고 김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앞서 증인으로 나왔던 노 판사와 같은 취지의 답변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다음해 1월 10일 또 한 차례 법정에 나와 변호인들의 반대신문이 계속될 예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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