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배경·전망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만 보고 가자.”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복귀를 선언한 24일 서울 목동의 한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자들이 뉴스를 보고 있다. 이날 삼성 계열사 주가는 대부분 강보합세를 나타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24일 전격적으로 경영 복귀를 선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복귀를 요청하는 삼성그룹 사장단의 요청에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일본 도요타 사태처럼 글로벌 톱 기업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애플과 일본 기업들의 반격이 거세다는 점이 그의 복귀를 앞당긴 것으로 분석된다.
●도요타 위기 삼성도 예외 아니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는 지난해 12월 특별사면된 이후 시기가 문제였지 복귀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등 임원진과 재계 단체들은 지난해 중순부터 이 회장의 복귀 필요성을 꾸준히 역설했다. 이 회장 본인도 지난 1월 “(경영 복귀에 대해) 생각 중”이라고, 지난달에는 “회사가 약해지면 도와줘야 한다.”고 언급, 경영복귀 의사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단독 특별사면 3개월 만에 전격적인 복귀가 이뤄진 것은 일본 제조업의 상징 도요타 자동차가 리콜 사태로 휘청거리는 등 세계 제조업계가 격변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인용 삼성그룹 부사장은 “지난달 24일 사장단 회의에서 도요타 같은 글로벌 톱 기업도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임원진이 이 회장에게 복귀를 강력히 건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00조원, 순이익 10조원을 기록하며 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성장했지만 조직 확대에 따른 위기대응 능력 저하라는 ‘도요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 회장의 복귀를 앞당긴 것이다.
●라이벌 기업들의 추격 거세다
라이벌들의 추격도 거세다. 애플은 지난해 4분기 2500만대의 휴대전화를 팔아 17조 9000억원(환율 1140원 기준) 매출에 영업이익률 28.8%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은 2억 2700만대의 휴대전화를 팔았지만 매출은 11조 5000억원, 영업이익률은 8.6%에 그쳤다. 더구나 ‘미래의 휴대전화’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2.8%에 불과하다.
도시바는 대규모 반도체 설비 건설과 함께 차세대 원전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소니는 구글 등과 손잡고 차세대 인터넷 TV를 개발하고 있다. 인도와 중동 등 우리 기업의 ‘텃밭’도 위협받고 있다. 이 부사장은 “투자나 사업조정 등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기 위한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포스트 이건희’ 체제 다진다
‘포스트 이건희’ 경영체제를 굳히려는 의도도 읽힌다. 2008년 4월 이 회장의 퇴진 당시 함께 현직에서 물러난 이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으로 복귀, 삼성전자의 경영 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또 이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쇼(CES)에서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의 손을 잡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삼성가(家) 자매들의 ‘화려한 데뷔’를 이끌어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이 회장의 행보에는 ‘원만한 2세 경영 이양’의 의도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 회장은 45세 때 그룹 회장직에 올랐고 이재용 부사장이 현재 41세인 점을 감안하면 몇년 후 경영 승계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2010-03-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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