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 경영 시대’ 본 궤도에>

<재계 ‘3세 경영 시대’ 본 궤도에>

입력 2011-05-22 00:00
수정 2011-05-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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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부진-서현 6개월간 현장경험 쌓기

재벌그룹 3세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경영 일선에 나선 뒤 이제는 ‘3세 경영 체제’를 굳히기 위한 ‘이력쌓기’에 전력을 쏟는 모습이다.

삼성그룹은 이재용·부진·서현 3남매가 각각 승진으로 각 계열사를 책임진 지 6개월이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국내외 주요 고객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교류를 확대하고,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고 있다.

밖으로 알려진 활동만 해도 지난 1월 그간 특별한 교류가 없었던 재계 라이벌 LG 구본무 회장을 방문해 회동했고, 지난달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찾아 정준양 회장과 면담하는 등 차분하지만 무게 있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재계 안팎에선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부터 ‘출근 경영’을 시작한 저변에 이재용 사장 체제로 부드러운 ‘권력 이양’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재용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때를 대비해 이 회장 스스로 나서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그룹 전반에 걸친 경영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하기 위한 포석이란 것이다.

3월18일 호텔신라 등기이사로 취임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오빠보다 밖으로 드러나는 활동이 활발하다.

그의 취임 후 호텔신라도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의 경우 전무 재직 시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의 수익성을 크게 개선시켰고, 최근에는 면세점 사업에 주력해 2004년 12.6%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을 작년 기준 27.8%까지 끌어올린 공적도 인정받고 있다.

막내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익기회 부사장도 주력인 패션 분야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경영 활동 전반에 나선 이후 특히 명품 시장에서 제일모직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확대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이 부사장은 작년 2월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삼성 서초사옥에 직접 출근해 경영현안을 챙기고 있는만큼 이재용 사장 등 자녀들도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더욱 밀도있는 경영권 수업을 받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2009년 승진과 함께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뒤 경영 전면에 나서며 비교적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아차에서 아우디 출신인 피터 슈라이어를 스카우트하며 ‘디자인 경영’을 꽃피웠던 정 부회장은 현대차에서도 ‘Together for a better future’라는 그룹의 새 비전과 통합 CI(Corpora te Identity) 작업을 주도하며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공장에서 불량률이 높아졌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1차 협력업체들을 직접 방문하며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을 한층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 18일에는 방한 중인 브라질의 마르코 마이아 하원의장 일행과 함께 경남 창원 현대로템 공장을 방문, 브라질 고속철 수주전을 측면 지원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그룹 안팎에서는 정 부회장이 확실한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불굴의 도전 정신’과 같은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DNA를 창출해 내는 것이 그가 맞닥뜨린 최대 과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경영 능력의 척도인 실적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이 2009년 12월 총괄대표이사에 올라 본격적인 ‘오너 2세 경영’을 시작한 뒤 신세계는 작년 총매출 14조5천570억원, 영업이익 9천927억원을 기록, 전년대비 각각 14.3%, 영업이익은 8% 신장해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경기 회복으로 유통업 전반이 호황을 맞은 것을 고려하면 이런 경영실적은 경영자로서 그의 능력을 계측하기엔 불충분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 부회장이 1년 반 동안 추구해온 방향은 이런 수치적 성과보다는 ‘직원이 행복한 회사’로 기업 문화를 바꾸는 데 더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여성의 비중이 많은 만큼 육아제도 강화, 보육시설 확충 등 여성친화적 기업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퇴직자까지 학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해 주목을 받았다.

정 부회장이 경영자로서 진정한 평가를 받으려면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마트 중국사업 등 그가 현재 떠안은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킴스클럽마트를 인수하긴 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약점으로 지적되는 판매채널 다변화도 신세계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다.

한진가는 조양호 그룹 회장의 자녀 3명이 아버지를 축으로 현재까지 무난하게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장과 호텔사업본부장, 객실승무본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장녀 조현아 전무는 기내서비스를 ‘명품’으로 끌어올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항공업무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업무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이 강점으로, 특히 자신의 상관보다 부하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말 여객사업본부장에서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장남 조원태 전무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을 견인하며 일각의 자질 논란을 잠재웠다는 평가다.

지금은 글로벌 명품 항공사로서 확고한 위상을 갖춰나갈 그림을 그려나가며, 최근에는 3년간 1억달러를 투자하는 신여객시스템을 구축키로 하는 등 선진 항공사로서 경영체제를 변모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상무보로 승진한 막내딸 조현민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장은 풍부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광고를 통해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대회 후원 및 대한항공 격납고 스타크래프트 결승전 개최 등으로 젊은 대한항공 이미지 구축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아직 20대인 만큼 좀 더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최근 장남인 조원태 전무와 함께 장녀인 조현아 전무의 목소리도 커지면서 앞으로 경영권 승계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한국영업본부장은 지난해 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이후 영업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인 2010년 9월 그룹 전략경영본부에서 금호타이어로 자리를 옮길 당시 “할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린 금호타이어를 반드시 살려내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밖에 건설업계의 대표적인 ‘3세 경영인’으로는 대림산업의 이해욱(43) 부회장이 첫손에 꼽힌다.

창업주 고(故) 이재준 전 회장의 손자이자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책임 경영에 나섰다.

섬유업계에서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조현준(43) 사장과 조현문(42) 부사장, 조현상(40) 전무가 대표적인 3세 경영인이다.

조 사장은 섬유와 무역의 퍼포먼스그룹(PG)장을 맡았고, 조 부사장과 조 전무는 각각 중공업과 산업자재 부문에서 PG장을 담당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4세인 박진원(43) 두산인프라코어 전무와 박태원(42) 두산건설 전무가 최근 계열사 인사에서 나란히 부사장 타이틀을 달았다.

이들은 계열사 이동도 없고 승진도 아니지만 대외적인 타이틀이 승격됨에 따라 앞으로 인사에서 중책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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