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전반 부정 일소’ 칼 뺐다

이건희 ‘삼성 전반 부정 일소’ 칼 뺐다

입력 2011-06-09 00:00
수정 2011-06-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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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계열사 감사·경영진단 및 인적쇄신 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9일 “삼성 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어 이를 바짝 한번 문제 삼아 볼까 한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계열사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와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사실 전날 삼성테크윈 사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그가 화·목요일 정기 출근하고 나서 처음 보고된 사안이어서 ‘시범 케이스’로 걸렸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날 작심한 듯 그룹 전반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음을 문제 삼았다.

그는 오전 8시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함께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도착하자 스스로 그를 기다리던 취재진으로 향했다.

4월 말부터 시작된 정기출근이 ‘일상’이 된 뒤로 차에서 내려서 김순택 미래전략실장, 박필 비서팀장 등과 함께 곧장 42층 집무실로 가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이 회장이 기자들에게 걸어와 “물어보라”고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할 말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 감사 결과를 계기로 인적 쇄신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고 묻자 “삼성테크윈에서 우연히 나와서 그렇지 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 과거 10년간 한국(삼성)이 조금 잘되고 안심이 되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나도 더 걱정이 돼서 요새 바짝 이를 한번 문제 삼아 볼까 한다”고 답했다.

삼성테크윈은 ‘빙산의 일각’일 뿐 다른 계열사에도 삼성테크윈 임직원들의 ‘일탈행위’와 비슷한 나태와 부정이 만연해 있고, 이를 철저히 따지겠다는 의미이다.

비단 삼성 뿐 아니라 다른 기업·단체나 한국사회 전반에 이런 현상이 만연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으나 삼성은 “삼성에 국한된 얘기”라고 극구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나아가 부정부패의 사례로 “향응도 있고, 뇌물도 있지만 제일 나쁜 게 부하직원들을 닦달해 부정을 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기 혼자 부정부패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부하까지 끌고 들어가면 그 부하는 나중에 저절로 부정에 ‘입학’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 계열사에 대한 대대적 경영진단과 감사, 그리고 그에 따라 책임을 질 임원과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를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이 회장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삼성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해온 ‘청결한 조직문화’를 재정립하기 위해 임원과 CEO들이 솔선수범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달한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우선 미래전략실과 계열사의 감사팀을 대수술해 그 기능을 한층 강화하는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 역시 전날 김 실장을 통해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 대책도 미흡하다”며 “감사 책임자의 직급을 높이고 인력도 늘리고 자질도 향상시켜야 한다”고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회장 비서실 감사팀은 삼성 내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만큼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현재 인원은 25명가량에 불과해 계열사에 대한 광범위한 감사가 어렵고 계열사별 감사팀도 사장 직속으로 돼 있어 자유로운 자체 감사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사회 통념상으로는 허용될 수 있어도 삼성에서는 그동안 금기시해온 ‘조그마한’ 향응과 선물, 근무 태만 등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감사팀의 온정주의에 따라 용인되면서 더 일상화한 것이 문제라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당장 전무급인 삼성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장의 직급이 상향조정되고 미래전략실 및 계열사 감사 담당 인원도 대폭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감사팀이 소신 있고 단호하게 감사하는 데 (CEO 등의) 내부적인 요인이 장애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이 문제 삼는 것은 수사 당국에 넘길 만한 중대 사안이 아니라 징계 등 내부 인사조치로 끝날 만한 일로, ‘어떻게 삼성에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 회장의 이번 발언은 경영진단이나 감사가 삼성테크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계열사로 확산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어서 삼성 그룹 내 전반의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지적한 바대로 삼성이 최근 ‘잘 나가면서’ 조금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라며 “모든 계열사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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