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서 외국인 순매도 당분간 지속할듯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과 함께 유럽발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급부상하자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특히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거론되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하자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국내 채권시장에서 그간 꾸준히 채권을 사들인 외국인이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로만 번지지 않는다면 채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이탈 가능성은 ‘기우(杞憂)’에 그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히려 추가로 매수에 나서는 외국인이 더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 “外人 원화채권 더 산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외국인은 전날 채권시장에서 국채를 2천527억원 순매도했다. 닷새만에 순매도로 돌아선 것이다.
외국인은 미국발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본격화한 지난 2일 1천65억원, 3일 971억원을 순매도했지만 이후 나흘 연속 순매수에 나섰다. 순매수 규모만도 1조3천477억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이 2천500억원이 넘는 순매도로 돌아선 것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유럽계 기관들이 자금을 본격적으로 빼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달 들어 지난 8일까지 유럽계가 국내 채권시장에서 빼 간 자금은 7천430억원에 이른다.
유럽계는 올들어 7월말까지 1조9천246억원을 순투자(매수-매도-만기상환)했다. 프랑스가 이달 들어서만 5천299억원을 순유출했다. 영국도 2천억원을 빼갔다.
그러나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선 것에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진단했다.
전날 외국인들이 판 국채는 잔존 만기가 10개월밖에 남지 않는 단기물이었다.
전날 채권값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일부 외국인들이 차익실현에 나섰고 단기물을 팔면서도 3년과 5년물은 꾸준히 샀다. 시장에서 발을 빼기 위한 수순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SK증권의 염상훈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섰다고 해서 이들의 매수 기조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려할 정도의 규모도 아니다”고 말했다.
동부증권 문홍철 연구원도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우수하고 원화강세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발을 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달 들어 유럽계가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일부 빼갔음에도 룩셈부르크 자금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덜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헤지펀드와 공격적 성향의 펀드들이 많이 포진된 채권투자국이다.
이달 들어 룩셈부르크는 280억원의 순투자를 보였다. 지난 4일 2억원의 순유출을 빼고는 모두 순투자 기조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채권 매수종목이 점차 장기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의 국고채 10년물 순매수 비중은 1.3%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30.2%로 급증했다.
10년물은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아 대외 불안이 확산하더라도 매도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외국인이 만기 보유 목적으로 채권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동부증권 신동준 채권투자전략본부장은 “미국과 유럽의 디폴트 리스크 부각을 계기로 펀더멘털과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고 국가 신용등급의 하향 가능성이 낮으며 통화가 저평가돼 있는 원화채권이 안전자산으로 격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화의 장기적인 약세 전망이 대두하기 전까지, 최소한 원ㆍ달러 환율 1천원까지는 외국인의 채권매수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주식시장 外人 이탈은 진행형
채권시장과 달리 주식시장의 외국인 이탈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디폴트 우려가 본격화한 지난달 12일 이후 전날까지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6조1천251억원의 순매도를 보였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4조8천억원이 넘는 원화채권을 순매수했다.
미국발 경기침체가 급부상한 지난 2일부터 전날까지 순매도 규모는 무려 4조5천276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은 운송장비(-1조2천724억원)를 비롯해 화학(-1조1천88억원), 전기전자(-7천930억원) 등 수출 업종을 집중 매도하고 있다.
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국내 수출기업의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외국인 이탈은 미국과 유럽계가 주도하고 있다.
올해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6조8천986억원을 순매수했던 미국계는 이달 들어 8일까지 6천878억원을 팔았다.
유럽계는 5천924억원을 순매도했다. 유럽계 중 헤지펀드가 많은 룩셈부르크가 3천332억원을 순매도했다.
종목별로도 외국인의 선호가 갈리고 있다.
외국인은 KB금융을 1천742억원어치 팔았고 대우조선해양(-1천138억원), LG(-975억원), 삼성중공업(-961억원), SK이노베이션(-691억원) 등도 팔았다.
그러나 기아차(2천505억원), POSCO(2천471억원), 현대중공업(1천566억원), LG화학(1천437억원), 하이닉스(1천284억원) 등은 매수해 대비됐다.
외국인의 주식시장 이탈 추세는 당분간 역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김정훈 투자전략팀장은 “세계 경기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계속되는 한 외국인의 주식시장 이탈은 계속되고 증시 변동성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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