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워진 은행 면접…연기·게임까지

까다로워진 은행 면접…연기·게임까지

입력 2012-10-26 00:00
수정 2012-10-2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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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정의 이틀째, 아침식사를 마친 오전 8시. 강당에 모인 이들에게 유명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일부 장면이 상영된다. 소리는 없다.

삼삼오오 모인 팀은 이 무성 화면에 음성을 입히라는 미션을 받는다. 주제를 정하고 이에 맞는 대사, 효과음을 넣어야 한다. 효과음을 내기 위해 빗자루 등 여러 가지 도구들을 찾느라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상반기 신입행원을 뽑기 위해 지난 5월 외환은행이 마련한 합숙 면접 과정의 폴리아트 광경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수적이고 반듯한 이미지가 강한 은행권 면접이 달라지고 있다.

‘100대 1은 기본’이라는 은행권 채용 과정에 합숙은 기본이고 연기, 게임, 유머 등 이색적인 면접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지원자의 스펙은 배제된 블라인드 면접을 하면서 지원자의 다양한 면을 보겠다는 취지다.

현재 우리, 신한, 하나, 국민 등 주요 시중은행의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가 한창이다.

외환은행은 2차 임원면접 전 서류 통과자를 대상으로 29~30일 하반기 합숙면접을 한다. 1박2일 합숙은 협상, 집단토론, 폴리아트 등으로 진행된다.

지원자들은 애완용 안전라이트, 알뜰 튜브짜기, 분리수거용 가위 등 일반인에게 생소한 물품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면접관에게 팔아야 한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역할을 나눠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야하는 과제도 있다.

폴리아트에서는 창의력, 협동심을 본다. 2년 전 팀별 도미노 만들기에서 지원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자 한단계 진화한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도미노를 해보면 지원자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폴리아트 역시 마찬가지다. 창의력은 물론 의사소통 능력, 관계성을 시험하는 자리다”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5~20일에 프리젠테이션, 집단토론 외에 게임면접을 했다. 눈감고 장애물 건너기 등의 단순한 게임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통적인 면접으로는 지원자의 의도되고 꾸며진 모습밖에 볼 수 없다. 1시간 놀이가 1년 대화보다 그 사람을 더 많이 말해준다는 플라톤의 얘기처럼 자연스럽게 지원자를 관찰하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15일부터 1주일간 실시한 면접에서 세일즈스킬을 점검했다. 모의창구를 만들어놓고 참가자들이 직접 금융상품을 판매했다.

면접관들은 고객이 돼 돌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은행은 개인기로 면접관 웃기기 등의 유머 면접, 콩트 등 팀 퍼포먼스를 발표하는 펀 페스티벌 면접도 진행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모의창구 면접이나 펀 페스티벌 면접에서는 응시자들의 금융지식 뿐 아니라 영업에 필요한 사회성과 순발력 등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이달 실시한 하반기 신입행원 1차면접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면접전형을 새로 도입했다.

지원자의 자격증이나 봉사활동ㆍ해외연수 경험, 인턴경력 등 획일적인 스펙에 대한 질문 대신 면접관과 응시자가 인문분야 서적 내용을 토론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응시자들은 면접 전에 자신이 최근에 읽은 인문분야 서적 제목을 적어 냈다. 질문을 던져야하는 면접관들도 응시자들이 써낸 책들을 1인당 5권 이상씩 꼼꼼하게 읽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기존의 가치관과 사회적 현상이 상충할 때 본인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등 응시자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질문을 많이 했다”며 “면접이 끝나고 응시자들로부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면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 때 은행권에서는 인내심 대결, 행군 등 압박면접이 유행했다. 지원자끼리 상대를 비하하면서 누가 모멸감을 더 오래 참느냐가 과제였는데, 지원자들 사이에서 ‘너무하다’는 여론이 일자 최근에는 놀이, ‘힐링’ 형태로 바뀌고 있다.

24일부터 26일까지 용인 기흥 연수원에서 면접을 실시한 신한은행은 연수원에 도착하면 1시간 가량 야외 벤치에 앉거나 산책길 걸으면서 면접관과 격의 없이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응시자의 긴장을 풀어줘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자는 취지다.

인사 시간이 끝나면 클래식 악단, 가수 지망생을 불러 미니콘서트를 1시간씩 진행하는데 중간에 응원의 메시지를 넣고 본격 면접을 시작한다.

하반기 신입행원 공채에서 국민은행이 180대 1, 우리은행이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 사이에 이처럼 옥석을 가리는 시도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며 “평소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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