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문제 없다면서 원전2기 중단… ‘왜’

안전성 문제 없다면서 원전2기 중단… ‘왜’

입력 2012-11-08 00:00
수정 2012-11-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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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부품 부적합에도 발전 정지한 적 없어…적절성 의문지경부 “불안해소 차원” 설명…전력수급 불안 고조

영광 원전 5·6호기의 운전을 연말까지 중단하기로 한 지식경제부의 방침을 둘러싸고 의문과 논란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극심한 한파로 동절기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단행됐다.

지난해 9.15 순환 정전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았고 올해 8월에도 전력 경보가 발령된 적이 있어 100만㎾급 원전 2기의 중단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경부는 납품된 부품을 전량 교체하기 위한 발전 중단이며 이를 통해 국민의 불안을 없애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검증 부품으로 인한 고장은 없었고 안전성에 하자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어 전력 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키면서까지 원전을 정지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전력시장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 지경부 “안전성 문제 없지만 국민 신뢰가 우선” =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원전에 실제로 사용된 미검증 부품 5천233개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펌프 등 안전성과 직결되는 핵심설비에는 설치되지 않았다.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 일반 기기류에 통상 사용되는 품목으로 원전 운영 보조 설비에만 들어갔을 뿐이다.

미검증품이 부착된 기기에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다중화시스템을 통해 대체 기기가 작동할 뿐 아니라 순차적 사고방지 시스템을 채택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즉 미검증품이 오작동하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상 가동’ 내지 ‘자동정지’가 전부라는 것이다.

한수원은 최근 11년간 부품 고장으로 원전이 정지된 사례를 봐도 이번에 검증서를 위조한 업체가 납품한 부품들과는 연관이 없다고 밝혔다.

지경부도 위조 검증서를 이용해 납품한 원전 부품이 안전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검증서가 가짜일 뿐 제품에 문제는 없다’는 그간의 설명이 위조 검증서를 이용해 납품된 부품이 앞서 검증된 제품을 공급한 회사가 제조한 동일 형태의 부품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전을 가동하면서 교체하는 게 가능하지만, 국민의 불안을 없애려고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5일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실무진에서는 원전을 가동하면서 부품이 조달되면 그때그때 교체하면 된다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다”며 “그러나 국민이 불안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美, 부품 부적합 시 발전정지 사례 없어 =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원전에 들어가는 퓨즈 등 일반규격품의 경우 품질검증서를 제출하면 안전등급을 인정해 채택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NRC(원자력규제위원회)는 품질검증과 관련해 부적합 사항이 발견되면 엄격한 절차에 따라 교체, 계속사용, 폐기, 비안전등급 사용, 전수검사 후 사용 등의 조치를 취한다.

NRC는 지금까지 품질 검증 부적합 사례 100여건을 적발했지만 발전소를 정지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008년 4월 캘버트 클리프스 원전에 중국산 모조 차단기가 공급된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모조품을 전량 교체하고 재고를 폐기했을 뿐이다.

1988년에는 울프 크릭 원전에 사용된 퓨즈의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 드러난 한국의 사례와 같지만 당시에도 공급된 퓨즈를 폐기하고 원전을 정지하지는 않았다.

한수원도 영광 5·6호기의 경우 발전을 정지해야만 교체작업을 할 수 있는 부품이 들어가 있지만 교체 기간은 대략 1-2일에 불과하다고 밝혀, 연말까지 발전 정지를 하지 않더라도 부품 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시인했다.

이관섭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영광 5·6호기에 문제의 제품이 2천여 개나 사용됐다. 가동하면서 교체하면 하나씩 교체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원전 가동 중단은 가치 판단의 문제이고 이 판단을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한전·한수원 4천788억 손실…소비자에 전가 = 원전 가동 중단은 한국전력과 한수원의 손실로 직결된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100만㎾급 원전 1기가 정지하면 하루에 10억원의 손실을 본다.

한전은 원전 전력이 줄어든 만큼 액화천연가스(LNG)나 유류 등 상대적으로 비싼 연료로 생산된 전력을 사야 하는데 전력 구매비용이 하루에 47억원씩 늘어난다.

원전 1기를 정지하면 두 회사가 입는 손실은 하루에 57억원이다.

한수원은 영광 5·6호기를 6일부터 정지했고 연말까지 부품 교체작업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한전과 한수원이 떠안는 손실은 대략 6천270억원(55일×57억원×2기)이다.

한수원이 이달 10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영광 5호기를 예방정비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비용 1천482억원을 빼더라도 이번 결정으로 두 기관은 4천788억원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당장 두 회사만 떠안으면 되는 부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요금 등에 반영돼 소비자에 전가될 공산이 크다.

국민의 불안을 없애려고 원전 2기를 정지시켰지만 결국 전력 공급 능력의 감소가 산업계뿐 아니라 소비자가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연말까지 대대적인 수요관리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 보조금을 주면서 수요를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정부의 전력 수요조정 사업을 위해 올해 전력산업기반기금 규모를 4천46억원으로 의결했는데 연말까지 산업계의 전력 수요 관리 수위를 높이려면 더 큰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올해 7월 고리 1호기 재가동이 안전성 미확보를 이유로 한 일부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 홍 장관이 ‘전력 수요 조정 비용이 하루에 30억가량이 든다’며 설득작업을 벌였던 것과 지경부의 이번 결정은 배치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정말 안전한가” = 불안감 해소를 위해 원전을 정지했다는 설명이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원전을 정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이런 결정을 했으면서 정부가 이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수원이 오죽하면 원전을 정지하겠냐”며 “뭔가 암처럼 (문제가) 퍼져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검증서가 위조됐다는 것은 서류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현장에서 제품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안전 치매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탈핵에너지국장은 “지경부나 한수원이 품질보증서 위조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안전불감증이 위조된 부품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쟁업체의 제보를 자진 신고하다 보니 지경부의 책임이 가벼워진 형태가 됐다”고 말한 뒤 “부품 자체가 위조된 게 아니라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왜 품질검증서를 받은 제품을 사용했는지도 의문”이라며 지경부의 원전관리 실태를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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