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문제없나…도덕적 해이 우려 여전

국민행복기금 문제없나…도덕적 해이 우려 여전

입력 2013-03-25 00:00
수정 2013-03-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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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상환능력 검증 과정·별도 심사기구 필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의 세부 내용이 발표되자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은 그간 언론과 학계에서 제기한 여러 비판을 잠재우고자 도덕적 해이를 막을 ‘안전핀’을 꽂았지만 실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칫 ‘기다리면 나도 지원받을 수 있겠지’라는 그릇된 기대와 허리띠를 졸라매며 힘겹게 빚을 갚아온 성실상환 채무자와의 역차별 문제 등이 금융권의 기본질서를 흐트러트릴 수 있다.

◇도덕적 해이 막을 ‘안전핀’ 미흡

금융위원회가 25일 교육부, 안전행정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청과 함께 발표한 국민행복기금 추진방안에는 성실한 상환을 유도하고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조항이 들어갔다.

재산이 있으면 재산 가치를 넘어서는 채무만 감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연체된 빚이 5천만원이고 재산이 1천만원이라면 4천만원에 대해서만 최대 50%를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재산은 가압류된다.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채무조정 약정은 취소되고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채무조정을 6개월 넘게 이행하지 않아도 약정을 취소한다.

하지만 혜택을 ‘취소’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패널티’(벌칙)인가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채무조정 약정을 맺고도 상환을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리지 않으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은닉재산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책임연구원은 “숨긴 재산이 있는데 채무조정 혜택을 다 받을 때까지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며 “채무조정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은 지원 대상이 아니지만 앞으로 혜택을 받고자 일부러 빚을 갚지 않는 이른바 ‘버티기 채무자’가 늘어날 우려도 적지 않다.

2002년 말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신용회복지원제도(개인워크아웃)가 만들어질 때 신용카드사의 연체율이 급상승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6개월 연체하면 행복기금에서 한 두번 정도는 더 처리해주리라 생각하는 고객들이 있다”며 “국민행복기금 대상자는 2월 기준이라고 창구에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준 수석연구원은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라며 “이런 부분을 해결하려면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이 이번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해주는 것이라는 원칙을 정부가 강하게 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실상환자 상대적 박탈감도 커

역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빚을 갚기 버겁지만 신복위 프리워크아웃 절차 등을 통해 원금을 꼬박꼬박 갚아나가는 성실상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이들은 이자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원금의 절반을 탕감해주는 등의 ‘대대적 혜택’은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 대상인 사람들보다 꼭 ‘사정이 나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금융권과 학계의 지적이다.

신복위 신용회복프로그램을 통해 6년째 빚을 갚은 김모(41)씨는 “국가는 어려워도 돈을 성실하게 갚는 사람들한테 먼저 혜택을 줘야 한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처음 국민행복기금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나처럼 소액이라도 꼬박꼬박 갚아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지원 대상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이렇게 되면 누가 돈을 성실하게 갚겠냐”고 반문했다.

바꿔드림론이나 신복위 프리워크아웃 대상을 국민행복기금 출범 이후 6개월간 한시적으로 확대해주는 대책이 있기는 하지만 ‘역차별’ 지적을 가라앉히기는 어렵다.

조영무 연구원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먹는 것, 입는 것 줄이면서 상환한 사람들이 있다”며 “전환대출 대상 확대도 이런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고자 만든 것 같지만 이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만한 충분한 대책인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퍼주기 식 지원 아닌 ‘깐깐한’ 지원 필요”

은행권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조정이 ‘금융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린 뒤 그 돈을 성실하게 갚아나가는 것이 대출의 기본 개념인데 아무리 상환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이자가 아닌 원금까지 깎아주는 것은 금융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행을 눈앞에 둔 만큼 제도를 효율적으로 이행하려면 ‘깐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참에 다중채무자의 빚을 털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퍼주기 식 지원을 하면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신청자인지를 거르는 별도의 위원회나 인터뷰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며 “채무자의 주변 사람을 대상으로 신청자가 진짜 상환 여력이 없는지 조사한다든지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진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며 “문제는 수십만 명이나 될 신청자 중에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람들을 골라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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