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재벌 편법증여 뒤늦게 과세 나설까

국세청, 재벌 편법증여 뒤늦게 과세 나설까

입력 2013-04-10 00:00
수정 2013-04-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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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추정 편법 증여이익으로 따지면 수천억 물 수도

감사원이 10일 내놓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대한 감사결과는 정부기관의 대기업 감시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편법적인 부의 이전을 과세하기 위해 완전포괄주의를 일찌감치 도입했지만 9년간 관련규정을 마련하지 않았고 법 적용에도 소극적이어서 재벌일가의 돈벌이와 교묘한 증여행위를 묵인해준 꼴이 됐다.

국세청은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현대자동차, SK, CJ, GS, 롯데 등 9개 재벌기업에 대한 과세요건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편법 증여에 따른 재벌총수의 이익이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해 이들 기업은 자칫 최고 수천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조세정의의 첨병 ‘완전 포괄주의’…출발은 화려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동안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세법에 열거된 상속·증여 행위에 대해 과세하는 ‘열거주의’ 방식의 조세제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재벌들의 새로운 편법증여 행태가 끊이지 않자 2000년말 법에 열거된 것과 유사한 상속·증여행위도 과세할 수 있는 ‘유형별 포괄주의’제도를 도입했다.

이즈음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가 그룹 순환출자고리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BW)를 싼값에 산 뒤 이를 주식으로 교환해 에버랜드 최대 주주로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2004년 1월1일부터 법률에 별도 면세규정을 두지 않은 한 상속·증여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세금을 물릴 수 있게 상속증여세법을 개정했다. 이른바 미국에서 시행 중인 조세 완전 포괄주의다.

상속증여세법 2조 3항에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을 직접·간접적인 방법으로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과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증여세 과세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법에 일일이 과세대상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상속ㆍ증여’가 발생하면 모두 세금을 매김으로써 세법 허점을 뚫고 부를 세습하는 행위를 원천봉쇄한다는 취지였다.

◇기재부-국세청 ‘떠넘기기’로 편법증여 막지 못해

그러나 감사원 지적대로 이 제도는 좋은 취지로 도입됐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국세청이 2004년부터 2012년 9월까지 완전포괄주의를 적용해 증여세를 부과한 사례는 66건 3천111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사업 양수·양도, 조직변경 등으로 인한 지분가치 상승과 개발사업의 시행, 사업 인허가에 따른 재산가치 상승 등 과세가 용이한 사례가 50건 2천678억원에 달했다.

감사원은 “이들 사례를 제외하면 국세청이 완전포괄주의를 적용해 증여세를 부과한 건수는 16건 432억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주식의 포괄적 교환에 따른 이익에 과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제도가 시행한 2004년 이후 롯데그룹 총수의 아들, 부인, 손자 등은 2개의 비상장법인을 만들어 계열사 직영의 영화관 내 매장을 싼값에 임대해 현금배당 280억원, 주식가치 상승이익 782억원 등 1천억원을 챙겼다.

이러한 일감몰아주기, 일감떼어주기 수법에 국세청이 증여세를 부과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완전포괄주의가 이처럼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것은 입법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와 집행기관인 국세청의 ‘떠넘기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사실조사를 통해 합리적 방법으로 증여가액 산정이 가능하다면 국세청이 완전 포괄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며 세부 시행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국세청은 증여가액 산정 등을 법령에서 정해야 부과할 수 있다며 공을 기재부로 떠넘겼다.

MB정부는 2007년 인수위 시절 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가 대기업 규제 완화의 목소리에 잠겨 중도 포기했다.

◇국세청 뒤늦게 과세 나서나

국세청은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담당국인 자산과세국이 주관이 돼 내용을 검토중이다.

일감몰아주기 부분의 경우 올해 1월 1일 이후 발생하는 거래분부터 적용대상이어서 2011년 12월 31일 제도 시행 이전의 행위에 대해 과세가 가능한 지 따져볼 계획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개별 사례에 대한 과세 여부를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 “그 실태와 관련 규정을 면밀히 살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성격상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는 시효는 15년이어서 감사원이 적시한 사례에 대한 과세는 시기적으로 문제가 없다.

현행 증여세율은 10~50%다. 과세표준 증여가액이 1억원 이하일 때 세율은 10%, 1억~5억원은 20%, 5억~10억은 30%, 10억~30억원은 40%, 30억원 초과분은 50%다.

누진 공제액을 감안하더라도 감사원이 지적한 그룹별 총수일가의 편법증여 이익을 그대로 적용하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증여세를 토해내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오는 6월 대상 기업들에 안내장을 보내 자진신고 형식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완전포괄주의의 정착을 위해선 기재부가 작년 세제개편을 통해 제도를 보완, 증여재산가액 산정 일반원칙을 만들었다.

재산의 무상이전은 이전한 재산의 시가, 무상이전은 시가와 대가의 차액, 기여에 의한 재산가치 증가는 재산가치 증가 전·후의 평가차액으로 정했다.

그러나 세법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증여재산가액을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일인데다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한 논란이 여전해 국세청이 완전포괄주의에 의거해 공격적으로 과세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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