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책임 요구에 화답한 모양새…향후 대응 고민
SK그룹이 30일 계약직 직원 5천800명을 정규직으로 돌리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재계에 ‘정규직 전환 도미노’가 일어날지 관심이 쏠린다.대규모 정규직 전환 결정은 CJ그룹·한화그룹·신세계그룹(이마트) 등에 이은 것이지만 비중이 큰 4대 그룹에서는 처음이라는 상징성이 있어 재계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재계가 대립각을 세우는 가운데 새 정부의 ‘사회적 책임’ 요구에 구체적으로 화답한 모양새여서 다른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SK그룹 대규모 정규직 전환 배경은
SK그룹은 이번 정규직 전환이 사회적 책임 실천을 위해 최근 수년간 추진한 ‘따뜻한 동행 경영’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반(反)대기업 정서’를 고려해 급작스럽게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상생 경영’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SK는 작년 3월 중소기업의 영역을 잠식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소모성자재 구매 대행사업(MRO) 부문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고 교복사업도 협력업체에 넘기고 철수했다.
최근에는 대기업 계열사간 내부거래 논란이 일자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SK C&C와의 거래 물량을 축소하고 기업광고를 외부 대행사에 개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작년부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왔다”며 “최태원 SK㈜ 회장 구속 수감 등 시기적으로 다소 민감한 상황에서 결정이 이뤄졌지만 동반성장 추진 사업의 하나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룹 측은 지난 23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의견이 모아졌고 계열사별 의사소통 과정을 거쳐 29일 저녁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최 회장의 의중을 일부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최근 서울구치소에서 최 회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정규직 전환 규모와 시기 등 주요 사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자신도 2010·2011년 협력업체 사장과의 간담회에서 “대·중소기업은 ‘갑을 관계’ 관계가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며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 ‘잇따른 정규직 전환’ 촉각 곤두세우는 대기업들 = SK그룹의 정규직 전환 발표에 다른 대기업들은 겉으로는 무덤덤한 반응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이후의 파장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현대차는 사내하청 근로자 6천500명 가운데 3천500명을 2016년까지 차례로 정규직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노조측에 밝힌 상태다.
다만 비정규직 지회측이 사내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해달라고 요구하며 맞서는 상태여서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기아차도 표면적으로는 비정규직·정규직 간 생산라인과 업무가 달라 별다른 비정규직 관련 이슈가 없다는 반응이지만 사내하청 노조를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 활동을 지속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 기아차에서는 최근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분신했었다.
다른 대기업들도 SK의 이번 결정 배경과 다른 기업들의 동향 파악에 나서는 등 촉각을 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는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정해진 게 없으나 정규직 확대로 큰 방향을 정하고 여러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직 사원이 많은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 3월까지 신선·조리 전문 도급사원 1천600명을 정규 직영 사원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임금·조직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민감한 이슈라는 점에서 정규직 전환에 선뜻 나설 기업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비용 등을 고려하면 그렇게 쉽게 결정할 경영상 문제는 아니다”며 “정부의 움직임, 사회적 분위기 등을 주시하며 당분간은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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