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측 “당시에는 정상거래…누락보고 아니다” 해명
우리은행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금융당국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우리은행은 의심 거래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지연보고 등이 확인되면 징계할 방침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유병언 일가에 대한 전체 금융권의 자금거래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우리은행의 지연보고 사실을 확인했다.
유 씨 일가가 2010년~2012년 우리은행 계좌를 통해 계열사 등과 수십차례 수상한 금융거래를 했는데 우리은행이 즉시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한 번의 거래 금액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으로, 전체 거래액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 금액 이상의 금융 거래나 횟수가 잦은 등의 의심 혐의 거래가 발생하면 금융회사는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에 이런 사실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검찰과 국세청, 금융당국이 전방위적으로 유병언 일가 재산 찾기에 나서자 뒤늦게 관련 보고를 했다. 무려 3~4년간 의심 거래 보고를 누락한 것이다. 우리은행이 제때 보고했다면 유병언 일가의 비자금 조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이 의심 혐의 거래에 대해 금융당국에 제때에 즉시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유병언 일가가 다른 은행에서도 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제때 보고가 안 된 것은 우리은행뿐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우리은행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유병언 일가의 지난 거래를 더욱 엄격한 잣대로 살펴본 것일 뿐 보고 누락이나 지연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유병언 일가의 금융거래를 다시 들여다보고 그 결과를 당국에 추가 보고한 것”이라며 “당시에는 정상거래 범주 안에 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현행 규정상의 보고 누락이나 지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유병언 일가와 청해진해운 관계사 등의 금융사 여신은 3천747억원이며 이 가운데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90%인 3천33억원에 달한다.
은행권 여신 중 우리은행이 빌려준 돈은 926억원에 달할 정도로 사실상 유병언 일가의 주거래 은행인 셈이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의 보고누락에 대한 세부 확인 작업을 거쳐 징계여부를 최종 정할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은행권의 검사를 모두 끝냈다”며 “검사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보고하지 않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우리은행 6개 영업점은 2009년 7월부터 9월까지 외국인 근로자 1천444명의 요청으로 1천740회에 걸쳐 급여 송금 명목으로 7천771만달러(한화 895억원)를 송금했다.
송금액이 회당 평균 4만5천달러로 근로자에 대한 통상 급여로 보기에는 과도하며 특정 24개 계좌로 송금됐다. 네팔 등의 국적인 외국인 근로자가 자국이 아닌 홍콩 등 제3국으로 송금해 의심스러운 거래로 판단할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음에도 우리은행은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가 지난해 적발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CJ그룹의 비자금 조성 관련 차명 계좌 수백개가 포착돼 금감원의 특별 검사를 받기도 했다. 2008년 2월에는 삼성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의 이유로 기관 경고를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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