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노력 의지 없어…전문경영인 없이 독단적 판단이 잘못””김 회장 개인은 부도덕하지는 않아…돌팔매질 안돼”
”대우차가 위험해진 건 김우중 회장이 자초한 일입니다. 다른 그룹들은 부채비율 낮추려고 자구노력을 하는데 김 회장은 자구노력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대신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해주면 (유동성 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도 작용한 듯합니다.”외환위기 직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경제정책을 입안했던 강봉균(71)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이 주장한 ‘대우그룹 기획해체론’에 대해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 전 장관은 “당시 경제관료들이 특별히 김 회장을 미워할 까닭이 없다”며 “대통령이 미워했으면 모를까, 김대중 대통령은 김 회장과 대우에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측근인 나나 경제관료들이 사감으로 미워하면서 자리보전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때는 경제가 파탄 나서 실업자가 넘쳐나던 때인데 경제관료들은 어떡하든 대우라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며 “무얼 얻으려고 일부러 어렵게 만들었겠느냐”고 했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집필한 대화록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대우그룹 해체가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던 강 전 장관 등 김대중 정부의 경제관료들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 대통령이 김 전 회장을 신뢰해 청와대 경제정책 회의에 참석하게 됐는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경제관료들의 정책에 반대하며 수출을 통해 IMF 체제를 조기 탈출하자는 주장을 편 것이 불화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 전 장관은 “당시 김 회장은 정부 내에서 정부 정책을 반대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아무리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라고 해도 자기 회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입장에 있는 재벌 총수와 정책 현안을 논의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대우그룹 해체로 직결된 삼성그룹과의 자동차 빅딜 무산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제휴협상 결렬도 당시 경제관료들의 ‘의도’ 때문이라는 김 전 회장의 주장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반박했다.
강 전 장관은 “대우가 문제가 있어도 자동차 사업 중심으로 재정비하면 그룹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아 도와줄 유일한 방법으로 삼성과의 빅딜을 제안한 것인데, 정부가 방해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과의 빅딜은 ‘삼성 공장에 만든 차는 삼성에서 다 사가라’, ‘삼성은 자금 여유가 있으니 2조∼3조원을 빌려달라’는 김 회장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깨졌다”며 “당시 대우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모든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지 않던 때인데 삼성이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겠느냐”고 설명했다.
대우그룹에 대한 워크아웃 선언 후인 1999년 12월 GM이 대우자동차를 50억∼60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인수의향서를 이헌재 당시 금감원장에게 비밀리에 보냈으나 이를 묵살했다는 김 전 회장 주장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다만 “GM은 대우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우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전 장관은 김 전 회장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도 숨기지 않았다.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김 회장이 당시 상황을 제대로 이해만 했어도 그룹 전체가 해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이 부도덕해서 그랬겠느냐. 그룹이 커졌는데 전문경영인 없이 혼자서 다 판단하다 보니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다. 그분한테 돌팔매질을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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