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엔저 투자확대에 활용…다른 마땅한 대책 없어 고민기준금리 인하 목소리 커져…15일 한은 금통위 주목
환율 불안으로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불안한 환율은 미약한 회복세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에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라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환율 1050선 돌파, 최고치 기록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5개월여 만에 1,050선을 돌파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053.8원으로 전 거래일 종가보다 9.4원 올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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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엔저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고 슈퍼 달러에 따른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점검해 필요하면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업계에 대한 지원과 점검 이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 엔저 ‘후폭풍’·금융시장 요동 우려
엔저와 달러 강세는 내수 부진으로 애로를 겪는 한국 경제에 수출 둔화와 금융시장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엔저는 일본 업체와 경합하는 한국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겹치는 품목은 55개이고 이들 품목은 우리나라 수출에서 54%를 차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5% 추가로 떨어지면 수출은 1.14% 줄고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한다고 전망했다.
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기반으로 수출 단가를 본격적으로 내리면 한국 수출 기업의 채산성은 악화된다.
더구나 과거 엔저 이후 한국 경제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또 다른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직후 엔고가 도래하면서 한국의 수출은 1985년 303억 달러에서 1988년 607억 달러로 급증했고 주가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하지만 1989년 엔저가 발생하면서 수출 증가율은 28.4%에서 2.8%로 급락했다.
달러 강세는 원화 가치를 내릴 수 있어 엔저의 부정적인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지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더 가시화돼 달러 강세가 두드러지면 한국 등 신흥국으로 들어왔던 자금이 이탈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불확실성이 커진다.
신흥국 시장에서 ‘달러 엑서더스’가 발생하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은 더 커지고 달러 강세는 더 심해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 정부, 시장 개입보다 기업 지원 강화
당국은 강 달러와 엔저가 일회적인 현상이 아닌 국제적인 조류인 만큼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엔저는 대응 방안이 마땅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정부가 일정 부분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원·엔 환율은 직접 거래하는 시장도 없다.
일각에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를 직접 매입하거나 원·엔 직거래 시장을 만들자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력으로 엔화 가치를 움직이거나 개입을 목적으로 직거래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출구전략 가시화에서 시작된 강달러는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장기적인 시장의 흐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애매한 시장 개입은 실탄만 낭비할 뿐이라는 현실론이 우세하다.
한국 입장에선 달러 강세가 엔화 약세를 일정 부분 희석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용인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결국 정부의 대응은 시장 개입보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미시 대응책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가 우선 엔화 약세를 활용해 설비투자에 나서는 기업에 세제·금융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요건을 충족하는 시설재를 수입하는 중소기업에 50% 관세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을 우선 검토 중이다.
시설재 수입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는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해 저금리 외화대출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외평기금을 활용한 외화대출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원한도를 최소 100억 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늘린 바 있다.
환 리스크 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에는 정책자금을 확대하고 환 위험 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 금통위, 기준금리 고심…이주열 “환율에 금리 대응은 부적절”
원·엔 환율 상승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서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엔화 약세가 아베노믹스 정책에 의한 양적완화에 원인이 있는 만큼 한국도 더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의 기준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시장금리가 연 2.25%인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국고채 3년물은 지난 1일 연 2.22%까지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경기 회복세가 아직 미약하다는 판단에 환율 불안까지 겹치면서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이정준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에서는 엔저 문제까지 겹치면서 추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가 부분별로 엇갈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6% 줄어 3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지만 소매판매 증가 등 그동안 문제가 됐던 내수경기는 회복 조짐을 보였다.
한 금통위원은 “오는 15일 금통위 회의 직전까지 경기 상황 판단에 도움이 되는 지표와 자료를 보고난 뒤에 판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금리를 내리더라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 명분으로 원·엔 환율이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주열 총재는 원·엔 환율의 움직임에 대해 우려했지만 “환율에 금리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발언한 바 있다.
대신, 한차례 금리 인하에도 미약한 회복세와 유로존의 부진한 경기 회복세 등 하방 위험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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