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전세대출 44% 급증…은행대출 증가액 90%가 가계대출

작년 전세대출 44% 급증…은행대출 증가액 90%가 가계대출

입력 2015-01-04 10:28
수정 2015-01-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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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자영업자 11% 급증…中企는 고작 3% 늘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편중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은행 대출 증가분의 90% 가량을 가계 부문 대출이 차지했다.

은행들이 담보나 보증 덕에 손실 위험이 없는 가계대출에 치중하다 보니 전세대출, 주택대출 등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데 비해 중소기업 대출은 거의 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외환은행 등 6대 시중은행의 주요대출(주택담보·전세자금·신용·자영업자·대기업·중소기업대출) 총잔액은 지난해 말 793조3천억원으로 2013년 말의 737조원보다 7.6% 늘었다.

이 증가율은 3%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은행 대출의 증가가 한국 경제의 성장세를 훨씬 앞질렀음을 보여준다.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은 전세자금 대출이다. 2013년 말 11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16조6천으로 무려 43.9%가 늘어났다.

전세의 월세 전환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등으로 전세매물 품귀 현상이 빚어져 전세가 상승률(4.4%)이 매매가(2.4%)보다 훨씬 높았던데다, 최근 수년 새 전세금이 많이 올라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과거에는 본인 스스로 저축 등을 통해 전세금을 마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전세금이 1억5천만원일 때 10% 올라가면 1천500만원만 마련하면 되지만, 3억원일 때 10%는 3천만원에 달해 은행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 규모로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액이 가장 컸다.

2013년 말 270조6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299조8천억원으로 증가액이 무려 29조2천억원에 달했다. 증가율도 10.8%에 이른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꾀하면서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대출규제가 완화된 영향이 컸다. 한국은행이 8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린 것도 주택대출 급증의 주요 요인중 하나다.

더구나 10월 3조8천억원, 11월 3조8천억원, 12월 3조5천억원 등 최근 석 달새 증가액이 무려 11조원을 넘어 지난해 총 증가액의 40%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주택대출이 너무 빠르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춰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부채는 결국 상환해야 하므로 심각한 소비 위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영업자대출도 주택담보대출 못지않은 급증세를 보였다.

2013년 말 127조9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141조5천억원으로 13조6천억원이나 늘어 증가율이 10.6%에 달했다. 자영업자대출은 2010년부터 매년 10조원씩 늘었는데 지난해에는 증가액이 훨씬 커졌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로 지난해 50대 창업이 15%나 급증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대출 증가세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가계대출에 편중됐다는 점이다.

주택, 전세, 신용대출에 실질적인 가계대출인 자영업자대출까지 합치면 가계 부문 대출의 증가액은 50조원에 달해 총대출 증가액 56조2천억원의 88.9%를 차지한다. 대출 증가액의 대부분이 가계 부문에 쏠린 셈이다.

은행마다 “중소기업대출 강화”를 외쳤지만, 지난해 자영업자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대출의 증가액은 고작 4조3천억원에 머물렀다. 2013년 말 153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157조8천억원으로 늘어 증가율이 2.8%에 불과하다.

이는 14조원에 육박하는 자영업자대출 증가액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로, 은행들의 중소기업대출 강화가 구호에 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기업대출은 2013년 말 98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말 100조4천억원으로 2.0% 늘어나 증가율이 중소기업대출에도 못 미쳤다.

10대 그룹의 사내유보율이 1천734%에 달할 정도로 대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있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반면, 조금이라도 부실 징후가 있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은행들이 대출을 극도로 꺼린다. STX그룹, 동양그룹, 동부그룹 등의 대기업 부실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자 은행들이 대출에 훨씬 신중해진 것이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에 치중하면서 은행 본연의 책무인 기업금융 활성화를 외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의 소득 정체와 맞물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를 은행들이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아파트 담보나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이 있는 주택대출, 전세대출 등에만 골몰하다 보니 은행 대출이 가계 부문에 극도로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고, 은행 본연의 책무인 기업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은행들이 겉으로는 중소기업대출을 늘린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중소기업에만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정부가 하라고 한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하지 말고,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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