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성 판단 명확해져 소송 확산 우려는 덜어” ”인력운용 부담 심화”…중소기업계는 양극화 우려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이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만 통상임금을 인정한 판결을 내리자 주요 경제단체와 대기업에서는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표출했다.경제단체들은 통상임금의 제한적 인정으로 소송 확산의 여지가 낮아진 점에 대해 안도하면서도 대단위 사업장 현장에서 새로운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업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파급력이 직접적으로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판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는 분위기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만 통상임금을 인정한 데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신의칙이 적용이 안된 것에서는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경총은 “이번 판결은 그동안 하급심에서 상여금의 고정성을 부정한 대법원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엇갈린 판결을 내렸던 것과는 달리 통상임금의 고정성을 명확히 밝힌 것으로 존중한다”면서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점은 종전의 관행과 합의를 무책임하게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총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노동조합 소속 근로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주면서 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이 일방적인 부담과 손해를 입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이번 판결이 최근 저성장 기조 속에 많은 기업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인력운용에 대한 부담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시한 ‘고정성’ 요건에 따라 명확히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 일부 하급심의 일관성 없는 판결로 야기될 수 있는 소송확산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전경련은 “극히 일부 근로자들의 상여금만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함에 따라 현장에서 새로운 갈등이 야기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전경련은 “법원에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판결한 만큼 현대차 노사는 이번 판결을 존중하고 경쟁력 강화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박재근 고용정책팀장은 “통상임금 소송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소송이었는데 다행스러운 판결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박 팀장은 “회사가 지금까지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간 관심도 없었던 통상임금을 이제와서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상임금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다른 기업의 노사도 소송까지 치닫지 말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중소기업계는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완성차 회사는 단체협약에 의해 근로기준법을 웃도는 높은 할증률을 적용받고 있어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라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 중소·중견 부품업체와의 임금격차 심화로 양극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완성차 업체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이 협력업체에 전이되면 제조업 전체 평균보다도 낮은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중소 부품업체는 고사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고 나아가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 업종인 도금, 도장, 열처리 등 뿌리산업 업계에도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앙회는 “이 같은 혼란은 법이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채 판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는 조속히 통상임금 범위를 기간 내 소정근로의 대가로 명시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임금과 관련해 재판 중인 기업들도 이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해 1심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항소한 르노삼성자동차는 현대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가 사실상 승소한 것으로 판결이 나오자 내심 2심 판결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통상임금과 관련한 1심 판결이 엇갈리게 나오는 상황에서 사측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판결이 나온 것이 다른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판단은 어차피 법원에서 하는 것이라 이번 판결로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부산지법 민사7부는 작년 10월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근로자 17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가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급해 온 정기상여금과 문화생활비 등 일부 수당이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피고가 원고들에게 16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는 이 판결이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해 그 이후 나온 다른 소송의 판결과는 다른 잣대가 적용됐다며 항소한 바 있다.
통상임금 이슈와 관련해 소송이 진행 중인 조선업계도 판결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조선업종에 똑같이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통상임금 관련 1심 판결이 진행 중”이라며 “이번 판결이 다른 회사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말 도출한 임단협 잠정합의안에서 상여금 800% 가운데 7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기로 했으나 이 잠정합의안이 노조의 찬반투표에서 부결된 바 있다.
작년 8월 임금·단체협상을 마무리한 뒤 현재 통상임금만 별도로 교섭을 진행 중인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노사가) 참고는 하되 처한 입장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적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업계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판결 내용을 조목조목 살펴봐야하는데 현대차와 임금체계가 달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번 판결이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측은 통상임금 관련 소송의 1심에서 승소했으며 2심이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현대차를 포함한 다른 회사들의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5월 전직 아시아나 승무원 등 29명이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미지급 수당과 퇴직금 등 9천959만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원고, 피고 모두 항소해 2심을 진행중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도 이보다 앞선 2013년 9월부터 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정부가 제시한 통상임금 노사지침에 따라 정기상여금 이슈가 해소돼 일부 기업에서 진행 중인 통상임금 소송의 판결에 따른 영향이 거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포스코는 정기상여금을 지급일(30일) 기준 재직자에게만 주고 있는데, 정부 지침상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전력도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어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반응이다. 관심을 둘 만한 부분은 성과급 가운데 균등분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인데 전체 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내부적으로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통상임금과 관련해 합의를 마친 상태이다.
삼성전자는 비연봉제 직원은 정기상여금을, 연봉제 직원은 월급여 가운데 전환금을 각각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했다.
LG전자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라 정기상여금 전액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SK하이닉스 노조는 시간외수당과 정기상여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게 맞는지 판단해 달라며 수원지법 여주지원에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