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개선 없이는 유가안정 되더라도 위기 지속”
미국 발레로에너지는 북미 전역에 10개의 공장을 두고 하루 240만배럴의 정제유를 생산하는 미국 최대 정유사다. 한때 실적부진으로 매각설까지 나왔었던 회사지만 지금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2010년부터 2013년까지 발레로에너지의 매출은 67.9%, 영업이익은 128.5% 늘어났다.
반면 국내 정유업계는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사상 최악의 실적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011년 10월 배럴당 10.29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3년 10월 3.49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작년에는 4∼6달러로 반등했다.
1월 현재 6.36달러를 나타내고 있지만 손익분기점(BEP)으로 여겨지는 5달러선을 간신히 넘긴 상태다. 이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팔고 남긴 마진 6.36달러에서 기본운영비 등으로 지출되는 5달러를 빼면 겨우 1배럴에 1.36달러만 수익으로 남겼다는 의미다.
정제마진이란 최종 석유제품의 판매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수입가격을 빼고 정유사들이 남긴 이익이다. 두바이유를 주 원료로 사용하는 아시아지역 정유사들은 두바이유가 주로 거래되는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을 수익성 지표로 삼는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과 더불어 북해산 브렌트유 위주의 서유럽 복합정제마진도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서부 텍사스산 원유 중심의 미국 복합정제마진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중이다. 2011년부터 평균적으로 10달러 이상의 두자릿수 정제마진을 내고 있으며 심지어 2013년 2월에는 정제마진이 26.69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올 1월에도 12.23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발레로에너지가 이처럼 사상 최고의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안정적인 고마진 때문이다.
발레로에너지는 영업이익이 2010년 18억7천600만 달러에서 2013년 42억8천800만 달러로 뛰어오른 뒤 작년에는 9월말 누계로 전년치 실적에 육박하는 41억500만달러의 기록적인 실적을 냈다.
2011년 1월초 23달러대였던 발레로에너지 주가도 최근엔 2배 가까운 45달러대에 이르고 있다.
값싼 셰일오일과 원가가 싼 텍사스산 석유를 정제할 수 있는 것이 고수익의 기반이 됐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석유와 가스를 해외로 수출하지 않고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한다. 이 덕에 높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발레로에너지를 비롯한 미국 정유사들이 낡은 공장까지 풀가동하며 수출을 큰 폭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발레로에너지는 텍사스 이글포드 셰일층 원유의 처리를 위해 앞으로 7억5천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한국 정유업계가 상대적으로 값비싼 원유수송 비용까지 부담하면서 원가경쟁력이 계속 뒤처지는 상황과는 딴 판이다. 앞으로 유가가 바닥을 찍고 완만한 상승세를 타게 되면 국내 정유사 실적이 나아질지 여부에 대한 답안을 발레로에너지가 쥐고 있다.
최근 3개월새 반토막난 유가는 국내 정유4사의 재고자산 손실을 작년 4분기에만 1조원까지 부풀리면서 지금은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정유업계의 재고손실만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제마진 개선이라는 국내 정유산업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실적 개선은 불가능할 것이란데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산업의 위기는 유가급락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상황”라며 “이미 2년전부터 원유를 정제설비에 넣는 순간부터 마이너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하락이 끝나더라도 정제마진 개선이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손실규모만 줄어드는 수준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작년 4분기에 유가급락과 OSP(Official Selling Price: 산유국이 실제로 판매하는 원유의 기준 가격) 인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정제마진이 회복됐으나 지속할지는 미지수다.
유가하락세가 진정되더라도 중동 및 중국의 정제설비 증설이 본격화됨에 따라 저수익 구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간 국내 정유산업이 내수시장이 과잉인 상황에서 수출형으로 체질을 개선해 성과를 냈으나 중국의 자급률이 100%에 이르면서 수출지역도 막막해진 것이다.
이미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물량은 선박 5척중 1척이 싱가포르 중계무역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고정 수출대상을 찾지 못해 싱가포르 시장에서 출혈경쟁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적자와 흑자를 반복해오다 지금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유가하락이 끝난다고 해도 정제마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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