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학군 수요도 ‘실종’…입주 물량이나 ‘갭투자’ 전세는 넘쳐
“방학 이사철인데 전세를 찾는 사람이 예년보다 많지 않아요. 전세 물량에 여유가 있고 가격도 그대롭니다. 학군 수요도 옛말인 듯해요.”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중개업소 대표의 말이다.
겨울방학 이사철이 이어지고 있지만 연초 아파트 전세시장은 잠잠하다. 이달에 낀 설 연휴를 감안하더라도 전세 시장이 예년 같지 않다.
전문가들은 다음 달부터 봄 이사철 수요가 일부 움직이겠지만 전반적으로 과거와 같은 전세난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 1월 전셋값 상승률 5년 만에 최저…학군수요도 ‘실종’
30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이달 한 달간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은 작년 말에 비해 0.06%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1월의 전셋값 상승률(0.18%)의 3분의 1 수준이면서 2012년 1월(-0.03%)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부산의 전셋값 상승률이 0.21%로 지난해 1월(0.25%)보다 오름폭이 둔화했고 작년 1월 0.78% 올랐던 세종시도 올해는 0.14%로 크게 감소했다.
작년 1월 상승세를 보였던 울산(-0.02%)과 전남(-0.01%), 충북(-0.04%), 제주(-0.08%)는 올해 1월에 전셋값이 하락했다.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월 0.44% 올랐지만 올해 1월은 0.07%로 오름폭이 줄었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 0.07%에서 이달엔 0.01%로 둔화했고 인천도 0.08%로 작년 1월(0.16%) 상승률의 절반으로 감소했다.
특히 강동구의 전셋값은 1월 한 달 동안 1.08%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지난해 위례신도시와 하남 미사강변도시의 입주로 전셋값이 약세를 보인 데 이어 올해도 3천658가구에 이르는 강동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 입주 영향으로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전통적 전세 인기지역의 학군 수요도 실종됐다.
양정중, 신목중, 월촌중, 한가람고, 양정고 등 명문 학군을 보유한 서울 양천구는 연초 전셋값이 0.21% 하락했다.
지난해 수능시험이 어렵게 출제된 일명 ‘불수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의 전셋값이 약세를 보인 탓이다.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예년엔 수능 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 학군 수요가 더 많이 몰려 전세가 품귀현상을 빚었는데 올해는 너무 잠잠하다”며 “가격이 높은 전세는 한 달 가까이 소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일대도 방학 기간 한 달가량만 거주하는 단기 임대수요만 있을 뿐 장기 전세 수요는 많지 않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특목고, 자사고 부상으로 학군 수요가 감소하면서 집값이 비싼 강남으로 굳이 넘어오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갭투자’ 전세 물량에 신규 입주 증가도 영향…“가격 급등 없을 것”
이처럼 연초 전셋값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입주 물량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9만1천913가구로 연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경기도의 입주 물량이 3만가구를 넘어섰고 서울도 1만가구에 육박(9천588가구)하는 아파트가 준공했다.
올해 1분기 입주 물량도 전국적으로 작년 3분기(7만564가구)보다 많은 7만2천409가구에 달해 만만치 않은 물량 공세가 이어진다. 서울의 경우 올해 1분기 입주 물량은 9천가구로 작년 4분기와 맞먹는다.
지난 2015년과 2016년 주택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전세를 끼고 구입한 일명 ‘갭투자’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다.
갭투자 물건들은 실거주가 아닌 투자 목적이 대부분이어서 전세 만기가 되면 다시 전세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지난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이 초강세를 띠면서 재건축이 임박한 신시가지 아파트의 저가 매물을 갭투자 형태로 구입한 사람이 많았다”며 “그런 물건들이 전세로 나오면서 전세 물건이 빨리 소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매매가격이 안정된 가운데서도 서울과 수도권 요지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떨어지는 추세다.
월세 거래 비중도 감소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8%까지 올랐던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 비중은 작년 11월 31.7%, 12월에는 32.2%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일단 설 연휴가 지난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인 봄 이사철이 시작되면서 전세시장에 수요자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서울은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단지(5천930가구)와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5천40가구) 등의 재건축 이주가 연내 시작될 경우 주변 전셋값을 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내년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활을 앞두고 재건축을 서두르려는 단지들 이주가 시작되면 서울 전세시장이 국지적으로 다소 불안해질 수 있다”며 “최근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주택 매수세가 위축되고 대신 전세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전셋값은 대체로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일단 하반기 입주 물량 증가가 변수다.
올해 전국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보다 7만여가구 늘어난 36만9천759가구로 2010년 이후 가장 많다. 서울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경기도는 12만2쳔가구로 지난해(8만7천530가구)보다 39.3%나 늘어난다.
이 때문에 올해 전세시장의 ‘홀수해 법칙’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
주택 전세는 통상 2년 단위로 재계약이 이뤄지면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부터 짝수해보다 홀수해에 전셋값이 많이 뛰는 ‘홀수해 법칙’이 이어져왔지만 올해는 크게 두드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주택담보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주택 매수세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전세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재건축 이주도 변수”라며 “그러나 경기도와 지방의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데다 최근 갭투자 등으로 인한 전세 물량도 증가하고 있어 2∼3년 전과 같은 전세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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