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법적 보호장치도 전무…해킹 피해에도 정부 구제 나설 여지 없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의 파산으로 그동안 잠재돼 있던 가상화폐 거래의 문제가 한 번에 터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가상화폐 투기 열풍으로 거래소가 난립하고 있지만 이를 조절할 관련 규제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투자자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도 없어 해킹 피해와 같은 사고가 터지면 손실을 투자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20여 곳으로, 개장을 준비 중인 곳까지 합하면 30여 곳에 달한다.
2013년 국내 첫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빗이 문을 연 뒤 한동안 빗썸, 코빗, 코인원 등 3대 거래소 체제로 가다가 올해 들어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루가 멀다 하게 거래소가 생겨 업계 관계자들도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돈이 되는 장사’이지만 진입 장벽이 없어 너도나도 뛰어드는 형국이다.
거래수수료는 대개 0.15% 내외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빗썸의 하루 거래량이 5조 원이므로 단순 계산으로 하루 75억 원의 수수료 수익이 발생한다.
중소 거래소는 이 정도의 이익을 거둘 수는 없지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만 갖추고 투자자들만 끌어모으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말 그대로 ‘앉아서 돈 벌기’다.
이 과정에 어떤 규제도 없다. 하루에 수조 원어치의 가상화폐가 거래되지만, 거래소 운영자는 어떤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고, 거래소는 어떤 보안 시설을 구비해야 하는지 규정이 없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아 거래소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행위에 대한 규율 체계를 유산수신행위규제법을 개정해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최근 국내 거래소 단체인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거래소 자격요건을 규정한 자율규제안을 마련했다.
규제안에 따르면 거래소 운영자는 자기자본을 20억 원 이상 보유하고 금융업자에 준하는 정보보안시스템, 정보보호인력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업계 자율안으로 모든 거래소가 이 요건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없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보지 않고, 화폐로도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개입하지는 못하지만 조심하라고 워닝(경고)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가상화폐) 거래소를 인정해줬다고. 그래서 거래가 폭주한다. 공인됐다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우린 이런 갬블링(도박) 판을 공인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번에 파산절차에 들어간 유빗이 ‘야피존’이라는 사명을 쓸 당시인 올 4월 해킹으로 비트코인 55억 어치를 도난당하고 나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거래소 운영 자격요건과 관련한 어떤 규정도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투자자 보호장치도 마찬가지다. 거래소 자체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을 뿐이다.
빗썸이 국내 최대 거래소로 충분한 보안·전산 설비를 갖췄다고 하지만 해킹과 서버 다운이라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빗썸은 올 6월 해킹 공격으로 개인정보 3만6천여건이 유출된 사안으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 4천350만원과 과태료 1천500만원을 부과받았다.
지난달에는 거래량 폭증으로 서버가 다운돼 투자자들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다.
내년에 가상화폐 거래소를 노린 북한발 사이버 공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상황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빗썸의 해킹도 북한 소행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해킹이나 서버 접속 장애와 같은 피해가 발생하면 결국 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피해자 스스로가 피해 복구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와 거래소에 대한 입장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구제에 나설 뜻이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보기 어려워 피해자 구제에 나설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보안의 기본이 안 된 업체가 발붙이지 못하게 거래소의 건전성 규제가 필요하다”며 “투자자들도 거래소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보고 선택해야 거래소가 보안 분야의 투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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