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 협찬 방송·연계 방송 명시 해야”
서울에 사는 50대 주부 김 모 씨는 최근 TV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특정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설명하는 장면을 봤다.김 씨는 평소 고민이던 갱년기 증상이 이 식품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방송 내용에 귀가 솔깃해졌다. 특히 의사, 한의사 같은 전문 패널들이 나와 설명하니 더욱 신뢰가 갔다.
이어 채널을 돌리자 우연히 나온 홈쇼핑에서는 똑같은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김 씨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해당 제품을 주문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위의 사례는 최근 종합편성채널(종편)과 홈쇼핑에서 많이 이뤄지는 연계 편성 방송을 소비자 입장에서 가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특정 제품이 종편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협찬 방송으로 등장하고 이후 비슷한 시간대에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연계 방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연계 방송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상품은 건강기능식품이다.
광고가 아닌 일반 TV 프로그램에 객관적 정보처럼 등장하기 때문에 일단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가 쉽고, 이후에 해당 상품이 홈쇼핑 판매 방송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구매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
연합뉴스가 홈쇼핑 업체 4곳을 취재한 결과,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이런 연계 방송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식품업체 등이 자사 제품에 대해 특정 시간대 홈쇼핑 편성을 요구하는데 보통 비슷한 시간대에 종편에서 관련 방송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A 홈쇼핑 관계자는 “거의 모든 홈쇼핑 채널에서 연계 방송이 이뤄지고 있다”며 “판매업체가 종편에 협찬 방송을 한 뒤 홈쇼핑에도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현행법상 연계 방송이 불법이 아니고, 모든 상품 방송은 방통위 규정을 준수하는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협력사들이 특정 시간대 방송 편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B 홈쇼핑 관계자는 “방송통신위원회도 종편과 홈쇼핑이 특정 상품을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며 “협력업체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하는 행동에 대해 우리가 ‘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런 연계 방송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이런 연계 방송을 이용해 ‘반짝’ 특수를 올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제2의 백수오’ 사태까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토종 약초인 백수오는 여성들을 위한 건강기능식품으로 알려져 홈쇼핑에서 불티나듯이 팔렸으나 이후 대부분 제품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015년 홈쇼핑 등 유통업체들의 대규모 환불 사태가 벌어졌다.
강원도 강릉시에 사는 주부 하태문(68·여) 씨는 “홈쇼핑에서만 봤더라면 긴가민가하며 사지 않았을 제품이더라도 교양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이 나와 좋다고 한 다음 홈쇼핑에서 보면 구매 충동이 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박재금(60·여) 씨는 “건강기능식품 대부분이 연계 방송이 많다니 속은 기분”이라며 “방송가 상술이 소비자를 우롱하지 않도록 해당 방송들에는 협찬 방송 혹은 연계 방송임을 명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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