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안부 후원 브랜드 가방 들지 말라”… 국내항공 日협력사 ‘오만한 금지령’

[단독] “위안부 후원 브랜드 가방 들지 말라”… 국내항공 日협력사 ‘오만한 금지령’

심현희 기자
입력 2019-01-29 02:12
수정 2019-01-29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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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착용 때 정치·종교적 물건 불허”
한국인 직원 “가방, 쇼핑백에 넣어다녀”
항공사 “협력사 자체 규정… 개입 못 해”
국내 한 항공사의 일본 협력업체인 FMG 매니저가 직원들에게 제복을 착용할 때 마리몬드 제품을 쓰지 말라고 지시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캡처 사진.  심현희 기자
국내 한 항공사의 일본 협력업체인 FMG 매니저가 직원들에게 제복을 착용할 때 마리몬드 제품을 쓰지 말라고 지시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캡처 사진.
심현희 기자
한 국내 항공사의 일본 협력업체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브랜드 ‘마리몬드’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한국인 지상직 직원에게 유니폼을 입고 해당 가방을 들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이 항공사는 아웃소싱업체 FMG를 통해 일본 지바현 나리타공항에서 근무하는 지상직 직원들을 간접 고용하고 있다. FMG는 일본 공항 핸들링 업체로 국내 항공사 외에 베트남 항공사, 러시아 항공사 등과도 업무 계약을 맺고 있다. FMG에서 뽑는 외국인 노동자 중 한국인들은 주로 이 항공사로 배정된다. FMG를 통해 이 항공사 지상직 업무를 담당하는 인원 가운데 절반은 한국인, 나머지는 일본인이다. 지상직은 발권과 티켓 확인 등의 업무 등을 담당한다.

지난해 11월 FMG에 입사해 이 항공사 지상직을 배정받은 한국인 A씨는 한국에서부터 들고 다녔던 마리몬드 가방을 일본에서도 출퇴근용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 담당 매니저로부터 가방을 들고 다니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매니저는 FMG 소속 지상직 32명이 모여 있는 단체 카톡방에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을 때는 마리몬드 브랜드 가방을 소지하지 말아 달라. 회사는 정치적,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내렸다. FMG 소속 직원들은 해당 항공사 유니폼과는 다른 유니폼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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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브랜드 마리몬드의 에코백.  마리몬드 홈페이지 캡처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브랜드 마리몬드의 에코백.
마리몬드 홈페이지 캡처
A씨는 “정치 구호가 적힌 것도 아닌데 단지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회사의 가방이라고 못 들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꼈지만, 입사 1년 내 퇴사하면 한 달치 월급보다 많은 위약금을 물게 한 고용 계약 때문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면서 “일본인 상사들이 지속적으로 ‘아직도 가방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지적해 결국 가방을 쇼핑백에 넣어서 갖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입사 전 사측이 외국인 노동자 비자를 받아줬으니 위약금 조항을 감수하라고 강요했고, 일자리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사측이 제시한 근로 계약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FMG 소속 한국인 직원들은 해당 항공사 본사가 FMG 측의 마리몬드 가방 금지령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항공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같은 내용의 문의가 수차례 들어와 나리타공항 지점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FMG가 정치적 종교적 메시지가 담긴 장신구를 금지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협력업체이지만 다른 회사이므로 그 회사의 규정에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2019-01-2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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