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지은 산과 같은 죄를/몸을 불로 사루면 스러지오리까/몸은 비록 천번 태우고 만번 사루더라도/산과 같은 그 죄가 스러질 길 없음을 아나이다” 춘원 이광수는 비록 자신의 친일활동에 대해 반성의 뜻은 없었지만 글로나마 이렇게 ‘내 죄’를 고백했다. 사죄(謝罪)라는 행위, 그러니까 지은 죄에 대해 용서를 빈다는 것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눈물로 통회 자복하는 절절함을 의미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80)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부회장의 ‘4·19사죄’ 성명을 놓고 말들이 많다. 요컨대 사죄다운 사죄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오늘 서울 수유동 4·19묘역을 참배하고 사죄성명을 냈다. “당시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희생된 학생들과 그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앞으로 4·19유족회 등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당시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발전에 함께 이바지하겠다.” 51년의 침묵 끝에 나온 공식성명이다. 뒷공론의 핵심은 진정성 여부다. 기념사업회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가려 3·15부정선거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4·19단체 등은 책임회피라고 반박한다. 공무원과 경찰이 활개친 천하 공지의 부정선거였음에도 85세의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사죄를 한다면서 왜 굳이 그런 ‘자존’(自尊)의 말을 덧붙였을까. 사죄 아닌 ‘사과’를 앞세워 기념관·동상건립 사업 등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라는 게 4·19관련 단체 등의 해석이다. 이 부회장도 언급했듯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온 세월”이 지난 지금이 사죄의 적기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그건 시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깨달음은 항상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도 사죄가 이뤄졌으니 다행이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186명이 죽고 6000여명이 다치며 일궈낸 소중한 피의 혁명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순결한 희생에 값하고 있는가. 진정 시대와의 화해를 원한다면 너나없이 그 가혹한 역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무릇 모든 혁명이 그렇듯 4·19혁명 또한 다음 세대, 우리의 후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빛바랜 역사로 잊히는 듯해 안타깝다. 4·19 민주정신은 이제 한 단계 승화돼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이 부회장은 오늘 서울 수유동 4·19묘역을 참배하고 사죄성명을 냈다. “당시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희생된 학생들과 그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다. 앞으로 4·19유족회 등 관련 단체와 힘을 모아 당시의 잘못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 발전에 함께 이바지하겠다.” 51년의 침묵 끝에 나온 공식성명이다. 뒷공론의 핵심은 진정성 여부다. 기념사업회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가려 3·15부정선거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4·19단체 등은 책임회피라고 반박한다. 공무원과 경찰이 활개친 천하 공지의 부정선거였음에도 85세의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사죄를 한다면서 왜 굳이 그런 ‘자존’(自尊)의 말을 덧붙였을까. 사죄 아닌 ‘사과’를 앞세워 기념관·동상건립 사업 등을 본격화하려는 의도라는 게 4·19관련 단체 등의 해석이다. 이 부회장도 언급했듯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온 세월”이 지난 지금이 사죄의 적기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 맥락이라면 그건 시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깨달음은 항상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도 사죄가 이뤄졌으니 다행이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186명이 죽고 6000여명이 다치며 일궈낸 소중한 피의 혁명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순결한 희생에 값하고 있는가. 진정 시대와의 화해를 원한다면 너나없이 그 가혹한 역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무릇 모든 혁명이 그렇듯 4·19혁명 또한 다음 세대, 우리의 후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는 빛바랜 역사로 잊히는 듯해 안타깝다. 4·19 민주정신은 이제 한 단계 승화돼야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2011-04-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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