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경범죄 풍속도/진경호 논설위원

[씨줄날줄] 경범죄 풍속도/진경호 논설위원

입력 2013-03-13 00:00
수정 2013-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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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로 장난치지 맙시다~” 종종 TV 앵커가 불량식품 관련 뉴스를 전하며 얹는 코멘트다. 짐짓 식품 관련 범죄행위를 따끔하게 질책하는 양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사자 스스로 먹거리 관련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의식구조가 담긴 듯해 썩 유쾌하지 않은 말이다. 한데 정말 먹거리 범죄를 ‘장난’ 정도로 간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1954년 제정 당시의 경범죄처벌법엔 ‘판매하는 음용물에 부정물을 혼합하여 부당한 이익을 도모한 자’ 등이 처벌대상으로 들어 있었다.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그 시절에 식품위생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던 것이다.

흔히 ‘사회적으로 용인될 도덕을 벗어난 행위에 대한 법적 규제’로 정리되는 경범죄는 속성상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한 시대나 한 사회의 통념을 고스란히 내보여 주는 초상인 셈이다. 개인의 자유와 저항, 군사정부의 통제와 억압이 맞부딪친 1970년대 장발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이 이를 상징한다. 유신 개헌 직후인 1973년 개정과 함께 처벌대상에 포함된 ‘장발을 한 남자’와 ‘안까지 투시되는 옷차림을 한 자’ ‘저속한 옷차림을 한 자’는 15년이 흘러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개정에서야 불법의 굴레에서 해방됐다. 반면 조직폭력배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험악한 문신’은 1994년 법 개정 때 새로 포함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교적 전통을 지닌 우리가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행위’를 주요 경범죄로 다루는 것과 달리 미국은 경범죄를 철저히 사회질서 위협행위로 인식한다. 깨진 유리창을 그냥 놔두면-즉 질서가 무너지면-그 지역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 이론’에 뿌리를 둔 접근이다. 때문에 미국의 경찰력은 사소해도 그냥 놔두면 사회적 무질서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를 조기 엄단하는 데 주력한다. 처벌 강도도 세다. 우리는 빈집에 무심코 들어가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태료를 매기지만 미국 뉴욕주는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달러 미만의 벌금에 처한다.

정부가 11일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해 과다노출에 5만원, 스토킹에 8만원을 물리기로 하자 인터넷이 달아올랐다. “다시 유신시절로 가자는 거냐”는 비난이야 경범죄처벌법이 걸어온 길을 모르는 소치이겠으나 ‘8만원 내고 스토킹 자격증 따련다’는 비아냥은 흘려듣지 말아야 할 듯싶다. 속도 위반 정도의 과실로 보기엔 피해자가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이 너무도 크다. 미국은 반스토킹법을 통해 징역형으로 다룬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2013-03-1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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