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특허전쟁, 오바마의 ‘판단 미스’/최용규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특허전쟁, 오바마의 ‘판단 미스’/최용규 산업부장

입력 2013-08-20 00:00
수정 2013-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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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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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보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에서 오바마가 애플 손을 들어준 것 말이다. 오바마가 최근 삼성의 표준특허를 침해한 애플 제품에 대해 미국 수입을 금지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오바마가 ‘애플 편을 든 것’은 표준특허를 형식논리로만 접근한 데서 기인한다. 표준특허는 상용특허와 달리 특허권자가 누구에게나 무조건 허여(許與)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오바마가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애플 제품의 수입 금지를 신청한 삼성이나 이를 수용한 ITC에 대해 ‘이것은 로열티 협상의 문제이지, 수입 금지 대상은 아니다’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이런 시각은 형식 그 자체에 매몰돼 형식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지 못했다는 오류를 안고 있다. 표준특허는 상용특허와 달리 공공성과 돈(특허료), 양자가 섞인 개념이다. 표준특허, 즉 표준기술이 없으면 제품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표준기술 정신은 문턱을 낮추고 개방하는 데 있다.

그럼 ITC가 표준특허와 상용특허도 구분하지 못했겠는가. ITC는 허여 못지않게 ‘문턱’도 인정했다는 사실을 오바마가 간과한 것은 아닐까 싶다. ITC의 애플 제품 수입 금지 결정의 잣대가 표준특허와 상용특허라는 구분이 아니라 표준특허라 해도 문턱, 즉 협상을 통한 합당한 특허료를 내야 한다는 뜻임을 오바마가 직시했어야 했다. 애플은 삼성의 표준특허를 쓰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사와 비교할 수 없는, 그야말로 ‘똥값’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애플이 삼성의 표준특허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대접에 삼성이 ITC에 애플 제품 수입 금지 신청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달이 나기 전에 애플은 삼성의 특허권을 무시할 게 아니라 삼성이 제시한 특허료를 놓고 성실하게 협상을 벌였어야 했다. ITC도 애플의 불성실한 협상에 문제를 삼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강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 개인으로 볼 때도 득 될 게 없다. 왜냐하면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보호무역주의의 대표적인 판정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보호무역주의의 선봉에 선 것으로 낙인 찍힐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일이 오바마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오바마 식대로라면 표준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은 누구도 수입 금지 신청을 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미국에 애플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표준특허를 갖고 있는 퀄컴 등 미국의 다른 기업들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회사가 중국이나 인도 등 다른 나라에서 특허권을 사용하려고 하면 다른 나라 정부 역시 오바마와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에 미국의 무역 및 외교 관계자들이 미국의 전반적인 무역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걱정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두개의 상업적 플레이어(삼성과 애플)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상황에 미 정부가 개입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직설적인 비판까지 받고 있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할 때 이번 오바마의 결정은 ‘판단 미스’다.

ykchoi@seoul.co.kr

2013-08-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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