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진의 도시탐구] ‘환희의 송가’가 필요한 국회

[최만진의 도시탐구] ‘환희의 송가’가 필요한 국회

입력 2019-12-10 22:46
수정 2019-12-1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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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연말이면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이 곡의 특징 중 하나는 마지막 4악장이 합창부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희의 송가’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의 유명한 문학가이며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를 삽입했다. 원래는 ‘자유의 송가’였는데 1786년 출판 당시 검열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한다. 그의 글들은 당시의 전제군주나 영주의 세력을 비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정판인 ‘군도’라는 희곡에 영주군과 대적하는 도적 떼의 활약을 그려 놓아 귀족들의 분노를 샀다. 백성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어 괴테와 함께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끌었다.

건축에서는 그 당시를 바로크라 일컫는데, 역시 귀족의 절대 권력이 강렬하게 표현된다. 그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시 한가운데 강력한 축을 설정해 이를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축의 정점에는 왕궁이 있고, 그 바로 앞에는 인공미를 가진 화려한 왕의 정원을 두었다. 그리고는 도시의 모든 구역들이 이 축에 연결된 도로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배치됐다. 중요한 것은 좌우 절대 대칭으로 돼 있어 어떻게 뒤집어 놓아도 왕의 권력이 중심인 것을 보여 주었다. 궁궐 뒤에는 후정이 있고 그 너머로 왕과 귀족들을 위한 자연 형태의 광활한 사냥터가 펼쳐져 있었다.

이러한 신도시를 만들려고 백성들은 엄청난 세금을 내고 노동착취도 당했다. 이 때문에 원성과 불만이 하늘을 찔렀지만 귀족들은 궁궐에서 호화로운 삶을 누렸고, 높은 담 안에서 연일 연회로 그들만의 리그를 즐겼다. 재정을 부담한 백성은 오히려 아웃사이더였고 철저히 무시당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 프랑스혁명은 바로 이에 대한 항거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국회의 배치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있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정확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중앙의 주출입구에서 전면에 있는 도시 방향으로 강력한 축이 뻗어 나가고 있다. 이를 따라 전면에는 인공정원인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앞의 의사당대로를 따라 다양한 구역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뒤로는 한강과 주변 자연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크 성처럼 정원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 접근이 어렵고, 의사당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밀실 같은 구조도 가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국회는 마치 바로크의 귀족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민 세금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책임 있는 일은 별로 하지 않는다. 이미 보도된 것처럼 금번 20대 국회는 정쟁에 매몰된 최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민은 도외시하고 오직 정치적 이익과 당리당략만을 추구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모든 사람들이 형제가 돼 평등하게 어우러져 자유와 기쁨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 국회는 언제쯤 높은 담장과 밀실을 깨뜨리고 나와 국민을 위한 ‘자유의 송가’를 불러 줄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2019-12-11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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