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경 기자의 출근하는 영장류] 해피엔드

[홍희경 기자의 출근하는 영장류] 해피엔드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17-12-19 17:52
수정 2017-12-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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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사회부 기자
홍희경 사회부 기자
생각지 못한 공포였다. 얼마 전 편도 30분인 케이블카를 타고는 내내 떨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일부러 찾아가던 소싯적 경험담이 무색해졌다. 하필 케이블카가 바다 위 공중에 잠깐 멈췄다. 그 십여초 동안 방정맞게 몇 해 전 케이블카 사고를 떠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함께 탄 대여섯 살 꼬마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니, 뛰지마”라고 하자 “사고가 뭐야?”라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사고라도 나서 죽으면 어떡하느냐는 맥락 없이 과한 공포는 어른의 몫. 사고라도 날 경우 생길 수 있는 온갖 나쁜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어린이에겐 없었다. 그러니 공포도 없었나 보다.

세상을 알아 갈수록 공포도 커지는 쪽으로 흐른 생각의 습관은 매일 신문 보기로 일과를 시작하는 직업이 남긴 상흔이다. 꽤 오랫동안 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진 이야기를 ‘킬’했고, 갈등이 사태를 악화시키다 못해 곪아 터지고 그 사이에 낀 탓에 평안했던 예전의 일상을 결코 회복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택’하기 일쑤였다.

‘채택’은 13년 전 시작했다. 그때도 사회부 소속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이들이 일상 중에도 참사가 재현되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이와 같은 심리적 공포로 그들의 뇌 형태마저 변형됐다는 내용을 취재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질환이었다.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사건, 참사, 부조리는 반복됐다. 그 여파로 상처 입은 채 회복하지 못한 이들의 숫자도 계속 늘었다. 신문에 쓸 갈등과 참상은 줄지 않았다.

사실 쓰지 않았던 이야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사건, 참사, 부조리를 겪은 뒤에도 일상을 다시 붙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대규모 재난을 겪은 이들 중 몇 할, 처참한 일을 당한 이들 중 몇 푼만큼은 삶을 다시 가꾸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일부는 자신의 비극을 제도 개선으로 승화시켰다. 회복탄력성이다.

희극보다 비극에 민감한 것이 언론의 속성이라고 합리화하고 싶지만, 솔직히 괜히 행복한 이야기를 다뤘다가 미성숙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 욕심이 더 컸다. 우리 사회는 유독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순진한 접근으로 폄훼하기 때문이다.

대신 갈등을 들춰내 분석하고 비판하는 이들은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극 뒤에도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으니 절망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대신 당신도 돌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지닌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각성시키는 ‘공포 마케팅’을 채택했다. 여야 대치, 빈부 대립, 세대 갈등, 보혁 전쟁이란 네 가지 큰 틀에서 요즘 기사들이 맴도는 이유일 것이다.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그간 노력을 비웃듯 ‘블랙스완’을 쓴 탈레브는 ‘전문가로 입증되지 않는 전문가들’ 목록에 비판이 업인 이들을 나열했다. 심리학자, 판사, 정치학자 등인데 과거 경험을 토대로 한들 한 치 앞 미래도 예측할 수 없으면서 전문가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인 양 가식을 멈추고 이제 비극만큼 희극에도 집중해야겠다. #옵션B #블랙스완

saloo@seoul.co.kr
2017-12-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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