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쇠를 직접 당긴 게 학생들이 아니라 여당 대표라는 사실이 실소를 자아내지만 ‘등록금 폭탄’이 이참에라도 터진 것은 잘된 일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곪아가도록 내버려둘 일이 아니었다.
첨예한 여야 간 정쟁 이슈가 된 데다 학생들까지 들고 일어났으니 어떤 형태로든 해법은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당장 돈을 깎아주느냐, 대출을 늘리느냐와 같은 미시적 해법만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중장기적인 틀을 갖고 논의돼야 한다.
해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 이상이 대학에 입학한다. 고등교육이라기보다는 의무교육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논의가 생략된 채 여야 정치권에서 등록금 대책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 판세로는 국가재정의 일정부분을 등록금 지원에 덜어주는 일이 불가피해 보인다. 보건, 의료, 빈곤층 등 각종 복지수요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에 재정을 쓰게 될 판이다. 등록금 지원을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어떨지에 대한 전제도 없이 당략에 따라 국민 세금이 춤추는 꼴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다 보니 유권자에게 인기 없을 정책은 논의의 장에 오르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기부금 입학제다. 앞으로 대학에 어떤 형태로든 제공될 당근과 채찍의 정책 패키지에 중기과제라는 단서를 달아 대학 기부금 입학제를 포함시키면 어떨까 싶다.
미국도 한국처럼 등록금이 비싸다. 그러나 각종 부대수입과 연방정부 지원 및 기부금이 많다. 등록금 의존율이 26%에 불과하면서도 전체 학생의 87%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유다. 반면 한국은 등록금 의존율이 52%에 이르면서도 장학금은 28%에게만 준다.
기부금 입학제는 대학들이 꾸준히 요구했고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계층 간 위화감, 금전 만능주의 등 비판을 받으며 현실에서 무산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기부금 입학제는 누구도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지난 9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민이 납득하고 가난한 학생에게 쓴다면 기부금 입학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지만 총리실은 “지극히 원론적인 차원의 얘기”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물론 서두를 것은 없다. 기부금 입학의 전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개방형 이사 선임, 대학평의회 구성 등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고 설립자 위주의 폐쇄된 밀실운영 체제를 깨뜨려 대학 혁신을 이루는 것이 기본전제가 돼야 한다.
너무 걱정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룰을 세우고 제대로 된 감시의 눈을 붙이면 된다. 정원의 몇% 또는 몇명을 기부금 입학의 상한으로 정할지, 입학사정은 어떻게 할지, 기부금의 용도를 어떻게 한정할지 등 요건을 갖춰 투명하고 공정한 관리기구를 마련하면 된다. 기부금 입학을 도입하려는 학교는 최상위권 몇몇 대학에 국한될 것이다. 해당학생을 받아들인 대학에서 얼마만큼을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전체 대학들에 어떻게 배분할지 등도 잘 따져 정하면 된다.
성적관리를 엄격히 하면 불량 학생이 졸업장을 돈으로 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정원 외로 뽑은 부자 학생 덕분에 가난한 학생이 교육의 기회를 얻는다면 어떻든 손해 나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반발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점만큼 단점에 대한 우려가 혼재해 있는, 그야말로 ‘양날의 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제로 내 아이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면 이해는 못해도 수용은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부금 입학이 대학별 재정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국내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이다. 영국 더 타임스와 컨설팅 회사인 QS 조사에 따르면 우리 대학들의 2011년도 세계 순위는 서울대 50위, 연세대 142위, 고려대 191위, 성균관 343위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내부만을 생각해서 양극화를 논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김태균 사회부장
해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 이상이 대학에 입학한다. 고등교육이라기보다는 의무교육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지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논의가 생략된 채 여야 정치권에서 등록금 대책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 판세로는 국가재정의 일정부분을 등록금 지원에 덜어주는 일이 불가피해 보인다. 보건, 의료, 빈곤층 등 각종 복지수요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고등교육에 재정을 쓰게 될 판이다. 등록금 지원을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지 어떨지에 대한 전제도 없이 당략에 따라 국민 세금이 춤추는 꼴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다 보니 유권자에게 인기 없을 정책은 논의의 장에 오르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기부금 입학제다. 앞으로 대학에 어떤 형태로든 제공될 당근과 채찍의 정책 패키지에 중기과제라는 단서를 달아 대학 기부금 입학제를 포함시키면 어떨까 싶다.
미국도 한국처럼 등록금이 비싸다. 그러나 각종 부대수입과 연방정부 지원 및 기부금이 많다. 등록금 의존율이 26%에 불과하면서도 전체 학생의 87%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유다. 반면 한국은 등록금 의존율이 52%에 이르면서도 장학금은 28%에게만 준다.
기부금 입학제는 대학들이 꾸준히 요구했고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계층 간 위화감, 금전 만능주의 등 비판을 받으며 현실에서 무산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기부금 입학제는 누구도 입에 올리려 하지 않는다. 지난 9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민이 납득하고 가난한 학생에게 쓴다면 기부금 입학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지만 총리실은 “지극히 원론적인 차원의 얘기”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물론 서두를 것은 없다. 기부금 입학의 전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개방형 이사 선임, 대학평의회 구성 등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고 설립자 위주의 폐쇄된 밀실운영 체제를 깨뜨려 대학 혁신을 이루는 것이 기본전제가 돼야 한다.
너무 걱정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룰을 세우고 제대로 된 감시의 눈을 붙이면 된다. 정원의 몇% 또는 몇명을 기부금 입학의 상한으로 정할지, 입학사정은 어떻게 할지, 기부금의 용도를 어떻게 한정할지 등 요건을 갖춰 투명하고 공정한 관리기구를 마련하면 된다. 기부금 입학을 도입하려는 학교는 최상위권 몇몇 대학에 국한될 것이다. 해당학생을 받아들인 대학에서 얼마만큼을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전체 대학들에 어떻게 배분할지 등도 잘 따져 정하면 된다.
성적관리를 엄격히 하면 불량 학생이 졸업장을 돈으로 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정원 외로 뽑은 부자 학생 덕분에 가난한 학생이 교육의 기회를 얻는다면 어떻든 손해 나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반발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장점만큼 단점에 대한 우려가 혼재해 있는, 그야말로 ‘양날의 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실제로 내 아이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면 이해는 못해도 수용은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부금 입학이 대학별 재정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국내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이다. 영국 더 타임스와 컨설팅 회사인 QS 조사에 따르면 우리 대학들의 2011년도 세계 순위는 서울대 50위, 연세대 142위, 고려대 191위, 성균관 343위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내부만을 생각해서 양극화를 논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2011-06-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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