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철강왕 드라마에 대한 오해/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철강왕 드라마에 대한 오해/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입력 2012-05-15 00:00
수정 2012-05-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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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풍광이 좋은 전남 여수에서 해양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여러 볼거리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탄성을 자아낸다고 한다. 그런데 눈여겨볼 명물이 박람회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수 진입부에 개통된 이순신대교는 우리나라를 사장교 첨단기술의 세계 6번째 자립국에 올려놓은 자랑거리다. 이순신대교는 광양과 여수산업단지를 이어주는 길이 2.2㎞의 사장교. 높이 270m의 주각 2개와 직경 5.35㎜의 케이블 2개가 무게 4t짜리 왕복 4차로 상판을 거뜬하게 잡아당겨 준다. 케이블 속에는 지구를 두 바퀴나 돌 수 있는 초고강도 강선 1만 2800가닥이 촘촘히 엮여 있다. 사장교는 유연하면서도 질긴 철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성과를 과시하려고 1851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산업박람회를 열었다. 이때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명물 중의 하나가 세번 강에 만든 최초의 ‘아이언 브리지’(철교) 콜브룩데일 다리다. 철의 단단한 성질만을 이용한 길이 42.7m의 작은 아치교인데, 지금 보면 초라할 뿐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전까지는 철의 가치가 은에 견줄 만했고, 그런 철을 378t이나 들여 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도록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철은 인류 역사에서 힘과 기술의 상징이었다. 고대 터키 지역의 히타이트는 처음으로 철을 제련해 강한 무기와 전차를 제작, 최강국 이집트를 누르고 제국으로 변신했다. 로마는 강하고 날카로운 글라디우스 칼로 세계를 제패했고, 아랍은 더 예리한 시리아 다마스쿠스 칼로 유럽의 십자군을 물리쳤다.

철광석에서 철재를 추출하는 것은 보편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누가 앞선 제련술을 갖고 철을 떡처럼 주무르느냐에 그 운명이 달렸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도 철의 기술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고구려의 찰갑은 로마 판갑의 성능을 능가했고, 또 우리는 철의 녹는 점이 1538도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해 선진 주물법으로 우수한 농기구를 찍어낼 줄을 알았다. 일본도(日本刀)의 원형질은 고대 한반도의 도래인(渡來人)에게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오늘날과 같은 제련술로 철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다. 뉴욕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마천루와 디트로이트에서 쏟아지는 자동차를 통해 미국이 강대국으로 변모하는 토대를 만든 주역이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우리에게 옛 ‘철의 강국’을 되돌려준 인물로 평가된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한반도에, 칼바람만 불던 황량한 포항에 맨손으로 제철공장을 지어 현재의 포스코가 있게 했다. 포스코는 꿈의 제철 기술이라는 ‘파이넥스’ 설비 등을 통해 우리 철강사를 다시 쓰고 있다.

얼마 전 포항시와 한 드라마 제작사가 박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그린 TV극을 만들려고 하다가 제동이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방송사 측이 예정대로 12월에 드라마가 나가면 대선과 맞물려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점이 답답하다. 아마 박 명예회장과 여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정확히 후보의 아버지)와의 어떤 연관성, 시대적 배경 등 때문에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지나친 해석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생각은 단순히 박 명예회장의 서거 1주기(12월 13일)에 맞추려는 것뿐이지, 달리 무슨 복선이 있겠는가. 그걸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이나,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넘겨짚는 사람이나 모두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우주 탄생 때 26번째 원소인 철은 초기 별의 죽음으로 비롯된 초고온과 초고압에서 제 몸의 구조를 쪼개며(핵분열) 27번째 원소인 코발트를 탄생시켰다. 철은 여전히 뜨거운 불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결정을 드러낸다. 철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카네기가 철강업에 뛰어든 지 15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철강왕 드라마를 보고 싶다.

kkwoon@seoul.co.kr

2012-05-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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