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김병일 사람과 향기] 온고지신, 국역자의 손에 달려 있다

입력 2012-03-01 00:00
수정 2012-03-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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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소홀히 했다. 구미 선진국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 과정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때는 주권마저도 빼앗겨야 했던 쓰라린 경험을 전통의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급격한 외래 문물의 유입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전통문화는 또다시 걸림돌로 인식돼 우리 것은 점점 멀어지고 버려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필요성에서 출발한다. 그간 우리는 단기간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자유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성공 스토리를 만든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 안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후진국 수준이고,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은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청소년들의 학원 폭력 문제도 그러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상들의 삶 속에 그 해답이 있다. 선인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 우애가 넘쳤으며 가정은 화목했다. 또한 사회는 예의가 넘쳐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우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할 정도였다. 그것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에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배려와 양보를 솔선수범하며 몸으로 가르친 어른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인들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삶과 생각은 방대한 문헌 기록을 통해 전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선인들이 남긴 기록 자료는 보석보다 값진 유산이다. 문제는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들 자료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와 다른 것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돼 있어 국역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고문서는 초서(草書)가 대부분이어서 탈초(脫草)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예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겪지 않는 우리만의 고충이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그들의 현재 문자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칸트의 저작을 읽을 수 있고, 중국과 일본 사람도 지금의 문자로 그리 힘들이지 않고 그들 조상의 기록과 만날 수 있다. 유독 우리만 우리 조상들이 남긴 기록을 오늘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귀감으로 삼는 데 탈초와 국역이 필수불가결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전통적인 교육을 충실하게 익힌 한학 원로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지만 그들을 이어 갈 세대의 배출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은 산처럼 쌓여 있는 보물을 포클레인이 아닌 숟가락으로 퍼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문 후속 세대의 양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이런 가운데 임진년 새봄을 맞아 지방에서 한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개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몇 년 전 개원한 전주분원에 이어 밀양분원을 세우고, 한국국학진흥원은 한문교육원 대구강원을 연다. 그동안 한문 교육기관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 지방 한문 교육기관의 등장으로 선현들의 지혜를 오늘에 되살리고 활용할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국역 전문가 양성은 인성 함양, 화목한 가정의 회복, 예의 염치가 통하는 사회의 구현 등 오늘 우리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고, 옛 기록 속 이야기 소재의 발굴을 통해 문화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길이다. 그 중심에 새롭게 길러질 국역자가 있다. 국역 관련 인재 양성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적 지원과 관심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12-03-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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