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이 생각 저 생각] 문화 융성 그리고 콘텐츠공제조합

[김종민 이 생각 저 생각] 문화 융성 그리고 콘텐츠공제조합

입력 2013-08-12 00:00
수정 201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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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강원발전연구원장·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종민 강원발전연구원장·전 문화관광부 장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의 문제는 사회과학연구의 고전적 질문이다. 19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이스털린 교수는 ‘경제성장이 인간의 몫을 개선해 주는가’라는 연구에서 경제의 부흥이 보다 나은 만족이나 행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해지나 이 단계를 지나면 곧 욕구는 커지고 행복의 기준이 높아지는 등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이스털린의 역설로 불린다. 34년 후 브루킹스 연구소의 젊은 경제학자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절대적 소득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시계열 통계와 함께 돈이 행복을 가져온다면서 위 역설을 반박했다.

현재 USC 교수로 있는 이스털린은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더 만족할 수는 있지만 돈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고 재반박했다. 젊은 경제학자들이 시계열 분석의 일부 오류를 인정했으나, 소득과 행복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만 달러 이상의 국가에서는 소득이 증가해도 이에 비례해서 행복이 증가하지 않았다. 욕구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에 행복의 결정에는 비경제적 요인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부흥 자체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며, 풍요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역설 속의 행복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사회복지의 약화와 개인적 행복의 저하를 우려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많은 나라들이 사회발전의 패러다임을 물질적 풍요에서 행복한 삶의 증진으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 국정의 기조를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에 두고 있는 우리의 경우 주목할 필요가 크다고 본다.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을 함께 이룩하는 데 필요한 촉매는 문화융성이다. 문화가 융성하려면 콘텐츠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건강한 콘텐츠산업의 생태계는 비교우위가 높고 경쟁력이 탁월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서 비롯되며, 문화예술가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창의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창작안전망의 구축이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기술과 접목해서 고품위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잘 만들어진 창작콘텐츠를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 또한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도록 창작 콘텐츠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소비자는 창작에 대해 제값을 지불하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외형적 생태계의 사활을 결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피의 흐름이다. 콘텐츠산업이 창조경제적 역량을 발휘하고 문화융성에 기여하느냐 여부는 현실적으로 콘텐츠 지원자금의 흐름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분야의 개인이나 기업은 영세하다 못해 열악하다. 콘텐츠사업자의 경우 매출액 10억원 미만이 87%를 차지하고, 종업원 10인 미만이 92%에 달한다. 꿈속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대부분의 콘텐츠 창작자들은 부동산 등 자산이 달린다. 담보를 요구하는 금융 관행은 창작자들에게 자금 절벽으로 다가온다. 한 줄의 이야기와 한 편의 이미지가 밑천인 콘텐츠산업을 위한 새로운 금융의 등장이 절실하다.

반가운 것은 영세 콘텐츠 기업들의 ‘돈맥경화’를 풀어 주는 콘텐츠공제조합이 곧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조합원 간의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영세사업자에게 필요한 보증과 융자를 적시에 제공하면서 한도는 높이고 요율은 낮춘다는 원칙 아래 운영될 것이라고 한다. 많은 기대 속에 출발하는 공제조합이 콘텐츠 생태계의 안전보호처와 창작의 마중물이 되어 문화융성의 디딤돌로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란다.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 분야인 콘텐츠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안착하는 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무엇보다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많은 젊은이들에게 반듯한 일자리를 풍성히 만들어 내는 역할을 잘 해내면 좋겠다.

2013-08-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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