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칼럼] 이 땅의 젊은이를 춤추게 하려면

[김종면 칼럼] 이 땅의 젊은이를 춤추게 하려면

입력 2014-08-21 00:00
수정 201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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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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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깨어 있으라, 잠들어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한 600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교황의 청년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4박5일간 방한 행사에서 ‘청년’이란 단어를 45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교황의 ‘행복 10계명’ 중에는 ‘젊은 세대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는 것도 있다.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결코 꿈을 뺏기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지만 우리에게 과연 꿈꿀 공간은 있는가. 깨어 있다 한들 어디서 춤을 출 것인가.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지만 우리 주위에는 절망보다 못한 가짜 희망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철학자 헤겔은 이렇게 썼다.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여기 장미꽃이 피어 있다. 여기에서 춤추어라.” 금쪽 같은 말이다. 정치인 천정배와 시민운동가 차병직이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춤추어라’라는 대담집에서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상의 나라, 허구의 나라, 불가능의 나라에 닿기 위해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 요컨대 우리가 발 딛고 선 바로 여기 현실의 땅에서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제 밭이랑만 곧게 갈며 정직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그악하다. 반칙과 변칙이 판친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300명이 넘는 생목숨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엽기적이기까지 한 폭력 병영문화는 젊은이들을 끝없는 환멸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어린 학생들조차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도무지 전망이 서지 않는다. 도처에 드리운 짙은 먹구름을 거두어 내지 않는 한 누구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감히 여기서 춤추라고 말할 수 없다. 절망의 문화를 넘어 믿음의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할 책무가 어른들에게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렇다 할 ‘어른’이 없으니…. 그래서 그렇게 너나없이 타는 목마름으로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외쳤나 보다.

교황의 방문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병통을 다시 한번 아프게 확인시켜 줬다. 지금의 난국은 교황이 강론에서 밝힌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무방비로 자신을 내맡긴 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업보다. 잃어버린 원칙과 상식을 되찾고 정의의 힘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혁신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다시 ‘세월호’다. 여야가 그제 사실상 유가족에게 특검추천권을 부여하는 세월호특별법에 재합의했지만 유족들은 난색을 표한다. 그 정도로 성역없는 진상 규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특검후보 논의 과정에서도 유족의 입장을 반영할 여지는 많다. 유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지만 ‘세월호 이후’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정서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는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결단이 필요하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것이 성직자의 첫 번째 임무”라고도 했다. 정치인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단식을 하면 벌써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말을 해대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그러니 세월호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해결 의지 자체를 의심하는 것 아닌가.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깨어 있는 젊은이들이 여기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정신적 불구자’들부터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약한 자들의 손을 꼭 잡아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이 징글징글한 ‘세월호 슬픔’의 강을 건널 수 있다.
2014-08-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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