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풀꽃 편지] 풀꽃문학관의 손님

[나태주의 풀꽃 편지] 풀꽃문학관의 손님

입력 2017-07-02 22:46
수정 2017-07-0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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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다. 특별한 공휴일이므로 문학관을 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문화원에 가서 일을 하면서 문학관에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로 했다. 원장실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11시 조금 넘어 핸드폰이 울렸다. 뜻밖에도 장선숙 교도관이었다.

장선숙 교도관은 서울 성동구치소에 근무하는데 내가 ‘장선숙 교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지난해 1월이었던가. 그의 직장으로 문학 강연을 갔던 일이 있었다. 문학 강연 중 가장 힘든 강연은 교도소나 구치소같이 특별한 장소에 있는 청중을 상대하는 강연이다. 말하기도 힘들고 드나드는 절차도 까다로워 마치 내가 수감자가 됐다가 나온 양 힘들다.

하지만 그날의 강연은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그 뒤로 장선숙씨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됐다. 솔선수범과 봉사정신이 특출해 지지난해에 교정대상을 받아 교감으로 특진했다고 한다. 우뚝하고 잘생겼다는 느낌이 강한 여성이다.

그 장선숙씨가 문학관에 왔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왔다는 것이다. 서둘러 문학관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올라서니 저만큼 문학관 잔디밭에 누군가가 보인다. 장선숙씨겠지. 그런데 구부정하게 엎드려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을 하는 걸까? 서둘러 문학관에 도착하니 장선숙씨는 맞는데 그의 한 손에 들려 있는 것이 궁금했다. 문학관의 꽃이나 풀은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의 운영 방책이다. 더러는 남겨 두는 풀도 있고 일부러 뽑아 주는 꽃도 있기 때문이다.

장 선생, 손에 들고 있는 게 뭡니까? 아, 이거요. 잡초예요. 선생님 뽑기 힘드실까 봐 대신 뽑았어요. 과연 그의 손에는 풀이 가득 들려 있었다. 장 선생, 그 풀들 좀 보여 줘요. 장선숙씨 손에서 나온 풀 가운데는 봄맞이꽃이란 이름의 풀도 있었다.

그 풀은 이른 봄에 새하얀 꽃을 피워 내년 봄에 다시 꽃을 보기 위해 일부러 뽑지 않고 기르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풀을 장선숙씨가 뽑아 버린 것이다. 아이, 그걸 뽑으면 어떻게 해요. 내년에 보려고 기르던 건데. 그럼 어떻게 하지요? 괜찮아요. 다시 심으면 되니까. 우리는 매화나무 아래로 가 방금 뽑은 풀을 다시 심었다.

봄맞이꽃을 심고 돌아서니 그 자리에 손님이 사 가지고 온 화분이 있었다. 화분의 꽃은 수국. 분홍빛 예쁜 수국이었다. 내가 수국을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는 다시 풀밭으로 가 수국을 심었다. 수국을 심고 방으로 들어와 장선숙씨의 성장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길고 길었다. 고향이 전남 비금도라는 섬이라는 것. 집안이 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직장에 들어왔다는 것.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 지금도 그 여선생님이 인생의 멘토라는 것.

누구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이듯 장선숙씨의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였다. 씩씩하게 살자고, 아직도 세상은 희망이 있고 이루어야 할 꿈이 남았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공주의 한 음식점에 들어가 7000원짜리 김치찌개로 점심을 나눴다.

사흘쯤 지났을까. 집으로 소금 두 포대가 배달돼 왔다. 발신지는 비금도. 비금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발신자인 장미희씨는 도통 모르겠는 이름이다. 누굴까?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바로 장선숙씨의 언니 되는 분이었다. 동생한테 대접을 잘 해 줘서 고마워서 부쳤노란다. 7000원짜리 김치찌개 한 그릇이 무슨 대단한 대접이란 말인가.

혹시 비금도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을 달란다. 동생 대신 자기가 대접을 하겠단다. 이건 참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비금도.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는 남해의 섬. 그곳에 이렇게 고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비금도란 섬이 갑자기 가까워진 느낌이고 정다워진 느낌이다. 그러하다. 이제 비금도는 나에게 그리운 곳이고 그리운 사람이 사는 섬이다.
2017-07-0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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