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운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갑오년(2014년)의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공직 개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해를 바꿔 을미년(2015년)으로 넘어오니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요새 어깨가 축 처진 채 울상을 짓고 있다. 고시 관문을 뚫고도 반평생 몸을 사리면서 잦은 야근을 견뎌온 것은 나중에 퇴직하면 월급 제대로 받는 곳에서 한 3년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가 박봉 앞에서 짧은 한숨을 내쉬는 아내의 모습을 봤어도, 나중에 퇴직금 대신 받을 공무원연금 덕분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간의 눈초리는 퇴직 후 취업을 무조건 ‘관피아’로 몰아붙이고 연금은 국민의 세금을 좀먹는 부당이득으로 간주하며, 따끔따끔하다.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정부세종청사 근처의 쪽방에서 지내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어디 가서 공무원 명함을 꺼내기도 싫다며 고개를 떨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잘못은 공무원 대다수의 탓이 아니다. 공직 경험을 재활용하는 퇴직 후 취업 관행이나 개천에서 난 용을 찾는 고시 선발 전형, 곗돈 붓듯 모아온 공무원연금 제도 때문이 아니다. 합리적인 틀에서도 빈 곳을 찾아내고 유혹을 떨치지 못한 소수의 일탈이었을 뿐이라 믿는다.
대한민국 공무원은 반세기 전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하다못해 ‘발신→수신→참조→제목’ 등 전언통신문 양식도 우리 공무원들이 미군 행정병들로부터 배워서 민간 기업인들에게 전한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꽤나 공부를 잘했다는 청년은 면사무소 새마을운동과의 말단 서기지만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이 컸을 것이다. 당시 새마을운동과는 누구나 원하던 총무과나 기획과보다 더 잘나가는 부서였고, 이게 동력이었다. 1980~90년대 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산업이 발전하자 공무원 직업이 한때 외면받기는 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취업난과 민간기업 구조조정 분위기 속에 다시 각광을 받는다. 시험 경쟁률이 100대1을 넘기도 한다. 이런 공직이 세월호에 떠밀려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만성적자에 허덕인다고 하니 연금 구조를 고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적자의 원인이 정부책임준비금 미납으로, 공공예탁금의 이자손실 등으로 줄줄 전용됐기 때문이라는 공무원 노조의 볼멘소리에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과거 정부의 책임일지라도 사과할 일이 있으면 제대로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싱가포르 공무원은 보수가 많고 권위도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뇌물 등 비리 혐의가 포착만 돼도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나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다는 그들의 반듯함을 우리 공무원들이 잊어선 안 된다.
kkwoon@seoul.co.kr
2015-01-22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