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기 수석논설위원
아세안은 1967년 8월 창설된 동남아국가연합이다. 경제·문화·사회 전반에 걸쳐 협력하는 한편 강대국의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현재 10개국의 구성체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다. 익히 아는 국가들이다. 싱가포르 말고는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곳이 없다.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태국을 제외하고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0~3000달러 수준이다. 대체로 자동차보다 오토바이 행렬이 거리를 누비는 가난한 나라들이다. 10개국을 떼놓으면 작아 보일 수도 있지만 합체된 아세안은 전혀 다르다. 다양성 속에서 통합을 이뤄 내는 거대한 경제공동체로의 탈바꿈이다.
아세안 10개국 인구는 6억 4000만명으로 세계 3위, 명목 국민총생산(GDP)은 2조 6000억 달러로 세계 6위다. 엄청난 시장이다. 인도네시아가 2억 5800만명, 필리핀이 1억 200만명에 이른다. 한국과는 달리 젊은 인구가 많고 중간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풍부한 자원까지 갖춰 성장 잠재력을 예측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해마다 안정적인 5%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도약의 발판을 다지는 것이다.
한국은 1989년 아세안과 부분적 관계를 텄다. 추진한 지 7년 만이다. 만장일치제인 아세안 회원국 중 반대가 있어서다. 1991년 전면적 대화 관계로 확대됐다. 현재 무역·투자·원조의 주요 대상 지역이다. 지난해 기준 아세안과의 교역액은 1188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무역흑자도 매년 300억 달러다. 한국의 해외투자 규모도 미국 다음으로 2위다. 상호 인적 교류도 800만명에 달한다. 한국을 찾은 아세안인은 200만명이 넘는다. 사드 문제로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지자 동남아인들이 눈에 띄고 있다. 요즘 늘어난 게 아니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아세안 사람은 거주 외국인의 28%인 50만명이다. 대다수가 노동자인데 결혼 이주 여성도 9만명 이상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친숙하고 가깝다. 하지만 낮춰 보거나 차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박원순 서울시장을 아세안 특사로 파견했다. 역대 처음이다. 지금껏 정부 차원에서 아세안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현실적으로 4강 외교에 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명분에 급급해 실리 외교를 다하지 못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박 시장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정상과 만나 새 정부의 뜻을 알렸다.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4대국 특사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 진작 했어야 했다. 다만 아세안을 찾고도 일정상 사무총장과 면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아세안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까닭에 한국에 더 호의적이다. 한류의 열풍이 뜨겁고 한국 제품의 선호도 역시 높다.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와 기술력을 배우려는 의욕이 강하다. 아세안은 한국에 없는 값싼 노동력과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상호 보완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중국에 대한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전초기지’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더 확실하게 아세안을 품을 필요가 있는 이유다. 올해는 아세안 창설 50주년, 아세안+3 20주년, 한·아세안 FTA 체결 10주년, 그리고 한·아세안 문화 교류의 해다.
2017-06-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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