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숙 논설위원
동생의 직언 덕분인지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사태 때 케네디 대통령의 위기 대응방식은 180도 달라졌다.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알고 난 뒤 미사일 철수 선언을 이끌어 내기까지 13일 동안 케네디는 주요 부처의 보고만 받은 것이 아니라 직급이나 직책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전문가들이 회의에서 배제되는 것을 보고는 다음 회의에는 꼭 그들을 참석시켰다. 자신은 물론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장관 후보자 여럿이 낙마하는 등 ‘인사 참사’를 겪으면서 직언하는 참모들이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틀렸다”, “안 된다”고 하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가부장적 집안의 아이들은 부모의 기에 눌려 위축되기 마련이다. 대통령과 참모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쓴소리를 들으려는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참모들은 ‘진실’을 말하기 어렵다.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에게 ‘악마의 대변인’을 두라고 한 이유 역시 백악관 참모들이 진실이 아니라 대통령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다. 로버트는 사전에 한 장관과 대통령에게 건의할 사안을 합의했지만 정작 회의에서 그 장관이 당초 사전 협의와는 정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장관은 회의 진행과정에서 대통령의 생각에 맞춰 자신의 의견을 그 자리에서 바꾼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토론과 대화를 즐긴다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 전직 장관도 “회의 전 미리 의견을 조율하지만 대통령 앞에서 엉뚱한 얘기를 하는 장관들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어느 나라든 대통령 앞에 서면 참모들은 ‘작아지고’, 대통령 생각에 ‘주파수’를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기에 박근혜 대통령도 조선시대 간언(諫言)을 업으로 했던 사간원 간관(諫官)처럼 청와대에 간언만 담당하는 특보를 둘 것을 제안한다. 그 직책은 ‘노(No)특보’로 칭하면 어떨까. 어떤 경우든 그는 대통령 앞에서 ‘아니되옵니다’라는 말만 해야 한다. 그의 입에서 ‘예스’(Yes)라는 말이 나와선 절대 안 된다. 국정 전반에 관해 무조건 ‘쓴소리’, ‘No’만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물론 그는 반대 논리를 정연하게 제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정부가 어떤 정책 추진을 검토한다면, 그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므로 추진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일부러 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중책을 맡길 생각이라면 그 특보로 하여금 후보자의 단점을 찾아내 적임자가 아니라는 명확한 이유와 근거를 대도록 한다.
그런 ‘악마의 대변인’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할 수 있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기 검증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어떤 사안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양면을 모두 검토할 수 있기에 종합적이고도 균형 잡힌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간언을 전문적으로 하는 간관의 역할을 강화했던 당 태종은 정치의 황금시기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성군으로 기록되고, 반면 간관을 없애 버린 수양제 곁에는 간신들만 득실거려 희대의 폭군으로 남은 사실을 오늘 다시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bori@seoul.co.kr
2013-04-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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