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팥죽/이도운 논설위원

[길섶에서] 팥죽/이도운 논설위원

입력 2011-12-22 00:00
수정 2011-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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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평양으로 출장을 갔다. 숙소였던 고려호텔 바에서 일행들과 술을 많이 마셨다.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토론이 길어졌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호텔 2층의 뷔페 식당에서 팥죽을 찾았다. 전날 먹어 보니 속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아침에는 팥죽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준비하지 않았습네다.”라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밥에 나물 몇 점을 담아 꾸역꾸역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그 여직원이 흰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팥죽이 담겨 있었다. 메뉴에는 없었지만 내가 찾으니 급히 만들어온 것이다.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마음이 통한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남이고 북이고 이념이고 체제고 그런 것들은 다 떨쳐 버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이 흔들리고 한반도가 요동치고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간다. 하루 종일 TV로 속보를 본다. 문득문득 분홍색 한복을 입고 수줍게 웃던 그 여직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1-12-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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