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만 존재한다고 믿는 친구가 있다. 첫번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 두번째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 세번째는 담배를 피우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겉으로는 이런 식으로 점잖게 분류하지만 그 친구의 마음 속 분류는 뉘앙스가 다르다. 첫번째는 정상인, 두번째는 비정상인, 세번째는 그 중간쯤으로 생각한다.
한때는 담배를 꽤 피웠던 그 친구. 회사 태스크포스에 파견 갔다온 뒤 담배를 딱 끊어버렸다. 태스크포스 사무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런 사무실에서 회의할 때마다 참석자들이 담배를 피워대자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세상에는 또 한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해줬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 두번째 부류가 세번째 부류로, 세번째 부류가 첫번째 부류로 바뀌어 간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부류가 네번째 부류로 바뀌어 간다면 좀 더 관용적인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한때는 담배를 꽤 피웠던 그 친구. 회사 태스크포스에 파견 갔다온 뒤 담배를 딱 끊어버렸다. 태스크포스 사무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런 사무실에서 회의할 때마다 참석자들이 담배를 피워대자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세상에는 또 한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해줬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 두번째 부류가 세번째 부류로, 세번째 부류가 첫번째 부류로 바뀌어 간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 부류가 네번째 부류로 바뀌어 간다면 좀 더 관용적인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2-04-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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