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단체장의 선거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내년도 아동복지정책예산을 변경하였다. 초·중등학교에서의 무상급식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의 사업계획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그 속엔 무상급식지원 예산을 늘리고 결식아동을 위한 중식지원 예산을 줄인 내용이 들어 있다. 대상 아동들은 저소득층의 맞벌이 가정 자녀이거나 소년소녀가장 혹은 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가정에서 점심을 먹기 어려운 아이들이 학교급식이 없는 방학이나 휴일에 해당기관에서 도시락을 제공받거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사업계획이 수정되면서 이들의 한끼 식사대금이 줄어든 것이다.
지역사회의 음식점들은 결식아동 중식지원기관으로 선정되는 것을 간혹 꺼린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이들의 한끼 식사비는 일반 손님을 대상으로 한 정상가격보다 적어 손해가 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봉사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미 일부 식당에서는 음식을 부실하게 제공하거나 손님이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서 오게 하여 아이들이 제때에 제대로 식사를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상 아동들도 눈치 보이기 싫어서 식당에 가지 않고 굶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선심 복지공약을 쏟아낸다. 예산 문제로 행여 상대 후보가 이를 비판하면, 기존의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이들이 꼭 토를 다는 이야기가 “선진국들은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심공약은 매번 효과를 발휘해, 지난번 선거에서도 덕을 본 후보들이 많다.
복지(福祉)라는 게 무얼까. 그야말로 사람이 ‘안녕( wellbeing )’ 상태에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복지정책은 사회구성원들 모두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모든 구성원들의 복지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복지정책을 시행할 때 적용해야 하는 원칙 중의 하나가 바로 보편성과 선별성에 관한 문제이다. 보편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과 선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을 구별하고, 이 두 원칙이 상치하면 지금 현재 무엇을 더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의무교육기간 동안 모든 아동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성에 해당하는 복지문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 결식아동들의 중식지원금을 깎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오히려 결식아동들의 한끼 중식지원금을 높여 이들이 보다 존중 받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단체장들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펴나가는 것은 순전히 유권자의 수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투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계층이 누구냐에 따라 복지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무상급식을 환호했던 유권자들이 자기자식의 무상급식을 위해 결식아동의 중식지원금을 줄이라고 요구한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무상급식을 후보자의 논리대로 선진국에서 다하고 있는 보편성 문제로 인식했을 뿐, 이로 인해 약한 자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거라는 얘기다.
지금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단체장들이 선거공약들을 실천하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정치인들이 공약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것이 진정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럴듯한 논리로 쏟아낸 복지정책들이 힘없고 약한 계층에게 피해를 주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차리리 실천을 안 하는 게 더 낫다. 이는 오히려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일이며, 순진한 유권자들을 약한 자에게 피해를 준 사람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이제는 유권자들도 그럴듯한 복지정책에 혹하지 말고 그 뒤에 어떤 얼굴이 숨어 있는지 제발 가렸으면 좋겠다. 올바른 복지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기 위해선 유권자들의 책임있는 행동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 교수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선심 복지공약을 쏟아낸다. 예산 문제로 행여 상대 후보가 이를 비판하면, 기존의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이들이 꼭 토를 다는 이야기가 “선진국들은 이미 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선심공약은 매번 효과를 발휘해, 지난번 선거에서도 덕을 본 후보들이 많다.
복지(福祉)라는 게 무얼까. 그야말로 사람이 ‘안녕( wellbeing )’ 상태에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복지정책은 사회구성원들 모두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모든 구성원들의 복지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복지정책을 시행할 때 적용해야 하는 원칙 중의 하나가 바로 보편성과 선별성에 관한 문제이다. 보편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과 선별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을 구별하고, 이 두 원칙이 상치하면 지금 현재 무엇을 더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의무교육기간 동안 모든 아동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성에 해당하는 복지문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위해 결식아동들의 중식지원금을 깎아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오히려 결식아동들의 한끼 중식지원금을 높여 이들이 보다 존중 받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단체장들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펴나가는 것은 순전히 유권자의 수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투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계층이 누구냐에 따라 복지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무상급식을 환호했던 유권자들이 자기자식의 무상급식을 위해 결식아동의 중식지원금을 줄이라고 요구한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유권자들은 무상급식을 후보자의 논리대로 선진국에서 다하고 있는 보편성 문제로 인식했을 뿐, 이로 인해 약한 자가 피해를 본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거라는 얘기다.
지금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단체장들이 선거공약들을 실천하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정치인들이 공약을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것이 진정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럴듯한 논리로 쏟아낸 복지정책들이 힘없고 약한 계층에게 피해를 주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차리리 실천을 안 하는 게 더 낫다. 이는 오히려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일이며, 순진한 유권자들을 약한 자에게 피해를 준 사람으로 만드는 꼴이 된다.
이제는 유권자들도 그럴듯한 복지정책에 혹하지 말고 그 뒤에 어떤 얼굴이 숨어 있는지 제발 가렸으면 좋겠다. 올바른 복지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되기 위해선 유권자들의 책임있는 행동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2010-10-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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