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세계적인 문화강국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는 보수와 진보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정권교체를 이루어 왔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내정을 담당하는 총리가 서로 소속 정당이 다른 동거정부(Co-habitation)가 탄생하기도 했다. 프랑스도 올 4월과 5월에 차기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현 사르코지 대통령을 선출한 2007년 대선 당시,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각 당 후보들의 문화정책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문화대국을 자부하는 프랑스 국민들조차도 문화는 경제, 환경, 외교 다음 순위로 중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대권 후보자들의 문화 공약을 검증해 보니 좌우 양측의 뚜렷한 차이도 없었다. 과연 문화정책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접근은 다르지 않은 것일까.
프랑스 문화정책의 큰 줄기는 드골 정권의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의 문화민주주의에 기반을 둔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보수정권은 문화유산에 보다 많은 관심과 예산을 배정해 왔다. 반면 진보정권은 문화예술활동의 창의성 증진에 중점을 둔다. 더불어 보수정권은 문화의 수요 측면을 강조하고, 진보정권은 공공 문화시설의 확충과 공공 문화예술단체가 펼치는 공급 측면을 중시한다. 보수정권이 민간재원 활용을 통한 다양한 문화예술 실험에 관심을 둔다면, 진보정권은 현장 예술인의 참여 확대와 요구에 따라 문화예술의 공급을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문화평론가들은 최근 프랑스의 문화정책이 좌우가 다르지 않고 수렴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문화예산의 성역화, 즉 정부 전체 재정규모 중 문화예산이 1%는 차지해야 한다는 믿음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이룬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보수와 진보정권의 문화정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즉 진보정권 10년 동안 문화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문화예술의 공급에 있어 현장의 참여와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영화진흥위원회 출범과 노무현 정부의 문화예술위원회 발족이 대표적이다. 두 기관 모두 기관장의 책임 아래 운영하던 공공조직을 현장 문화예술인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조로 바꾸었다. 이들 기관은 MB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참여 인사들의 성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한편 보수정권인 현 정부는 과거 정권보다 문화 소외계층에 대해 월등한 관심과 예산을 배정했다. 연간 5만원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화바우처 제공,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문화나눔프로그램 증대, 공공예술단체에 대한 지원 확대 등 과거 진보 측이 갖고 있던 관심을 정책으로 실현시켰다. 결국 우리도 서로의 문화정책이 상호보완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에는 문화에 대한 공약도 세심하게 살펴보자. 혹자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문화는 배부른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이 팍팍하고 어려울수록 한 소절의 노래가, 한 점의 그림이,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공연이, 경기장을 울리는 함성이,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감동은 더 큰 법이다. 문화 역시도 국민의 세금이 사용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문화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도 즐겁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진 문화 향유권을 당당히 주장해야 할 때가 왔다. 차 한잔을 놓고 음악을 들으며 문화적 관점에서 각 정당과 후보를 평가하는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
2012-01-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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