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행작 ‘방자전’ 이후 1년여 만이다. ‘적과의 동침’을 차기 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휴머니즘이 살아 있는 좀 따뜻한 느낌의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도 선뜻 (출연을) 결심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는데 변희봉, 유해진, 김상호 등 좋은 배우들이 속속 캐스팅되더라(웃음). 그동안 단둘이 연기한 작품이 많았던 까닭에 여러 명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도 해 보고 싶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북한 인민군 장교 정웅 역할을 잘 소화했는데.
-정웅은 군인 장교치고는 마초적이지 않다. 변희봉 선생님이 당시 북한 장교들은 매너가 좋고 기품이 있었다고 하셨다. 규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꽉 막힌 사람보다는 외유내강의 남자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웰컴 투 동막골’과의 단순 비교는 곤란
→북한 사투리가 무척 자연스럽다.
-극중에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서울말처럼 담백한 맛이 있어 처음엔 쉬워 보이더니 미세한 뉘앙스 차이 때문에 어려웠다. 탈북자 출신 여성 장교에게 지도를 받았다. 한창 촬영 중에 연평도 사태가 터졌는데, 북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역할에 대한 부담이 생기더라. 그래서 좀 착하게 연기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웃음).
→‘웰컴 투 동막골’(2005)과 설정이 비슷하다.
-‘웰컴 투 동막골’이 판타지 영화라면, ‘적과의 동침’은 한국전쟁 당시 시골 마을 주민과 인민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사실적인 부분이 강조된 영화다. 때문에 자신들의 운명도 모르고 방공호를 파야 했던 당시의 비극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물론 영화적으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점이 아쉬웠나.
-캐릭터의 디테일을 자세히 살리고 싶었는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았다.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는 장면이나 첫사랑 설희(정려원)와의 로맨스가 더 애틋하게 그려졌으면 좋았을 텐데, 역할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없는 것을 끄집어내 보여 주려고 하다 보니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다.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두 살리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연기할 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인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집을 많이 부리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다 잊고 현장 분위기에 충실한다. 상대 연기자와의 호흡을 중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색깔로 따지면 빨강이나 노랑 등 원색보다는 두 가지 색이 섞인 파스텔톤에 가까운 배우라고 생각한다.
→출연 작품을 보면 시대극과 현대극이 고루 섞여 있다. 양쪽에 잘 어울리는 외모 때문인가.
-개성 없게 생겼다는 말인가(웃음).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가끔은 거울을 보기도 싫다. 잘생긴 것 같지도 않고, 균형도 안 맞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셀프 카메라는 죽어도 안 찍는다.
→자신에 대한 평가가 냉혹한 것 같다. 성격인가.
-성격 자체가 무게 잡는 것을 싫어하고, 허세나 가식은 더더욱 싫다. 그래서 멋진 척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다. 낯가림이 있어서 그렇지 친해지면 영화 ‘홍반장’의 오지랖 넓은 동네반장 홍두식보다 더 까분다.
→우리 나이로 마흔인데 부담감은 없나.
-솔직히 더 즐겁다. 물론 나이 먹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머리는 즐겁다. 13년차 연기자인데, 지금까지는 진짜 연기를 하기 위한 트레이닝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나 자신을 많이 알리고 포장하는 데 힘을 뺐지만, 지금부터는 내 스스로 연기를 즐기는 데 더 힘을 쏟아 보자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가. ‘적과의 동침’ 말고도 올해만 벌써 두 편의 영화(‘투혼’, ‘커플즈’)가 더 개봉 대기 중이다.
-‘적과의 동침’을 찍으면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투혼’을 빨리 찍고 싶었다. 왕년의 천재 야구 선수로 나오는데 역할 덕분에 힘과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로맨틱 코미디인 ‘커플즈’는 ‘투혼’을 찍는 동안 나를 기다려준 영화라 촬영에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공개 연애 안 하겠다고 한 말의 뜻은…
→남자 배우들이 선호하는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 출연이 드문데.
-왜 나라고 멜로 영화만 출연하고 싶겠나. 나도 너무 마초 같은 역할만 아니라면 남성미가 강조되는 역할을 해 보고 싶다. 그런데 만족할 만한 시나리오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웃기려고 애쓰기보다는 툭툭 던지는 코미디 연기도 해 보고 싶다. 그렇다고 멜로 배우 이미지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미묘한 감정선을 살리는 멜로 연기야말로 가장 어렵다.
→얼마 전 공개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됐는데(그는 공개 연인이었던 탤런트 김지수와 6년 연애 끝에 2009년 결별했다).
-특별한 뜻은 없었는데, 서태지·이지아씨 사건과 맞물려 무슨 엄청난 발언을 한 것처럼 비춰져 좀 당황스러웠다. 연애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하지만 아무리 공개를 안 하려 해도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같은 시대에 들키지 않기가 쉽겠나.
→성공한 부자(父子) 연예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거론된다. 아버지(김무생·2005년 작고) 명성 때문에 부담이 컸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늘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셨다.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부담감도 적었다. 아버지에게 기댔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쉽게 올라가면 쉽게 내려오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 아닌가.
유난히 상복(賞福)이 없는 것 같다는 말에 스스로 연기에 진정 만족스러울 때 상을 받고 싶다는 김주혁. 그는 아무리 지쳐 쓰러져도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뿌듯하고, 방법이 서툴더라도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평생 연기를 해도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는 천생 배우였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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