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은 나치 스파이였다?

코코 샤넬은 나치 스파이였다?

입력 2011-08-17 00:00
수정 201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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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언론인 출간 샤넬 전기에서 주장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던 코코 샤넬이 2차대전 중에 독일 나치의 스파이로 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16일 벨기에 뉴스통신사 벨가가 보도했다.

미국 언론인 핼 버허건은 이날 출간한 샤넬의 전기 ‘적과의 동침, 코코 샤넬의 비밀전쟁’에서 1940년 당시 57세였던 샤넬이 독일군 첩보기관 ‘압베어’의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했다고 벨가는 전했다.

버허건은 자신이 프랑스와 영국, 독일, 미국 등의 각종 문서들을 조사한 결과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샤넬의 나치 부역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샤넬의 압베어 요원 번호는 F-7124, 암호명은 웨스트민스터였다고 밝혔다.

이 전기에 따르면, 샤넬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당시 귀족 가문 출신인 독일군 장교 한스 귄터 폰 딩크라게와 사랑에 빠지고 오랜 관계를 맺으면서 압베어의 요원이 됐다.

폰 딩크라게는 당시 지중해 지역과 파리에서 자신의 첩보망을 가동하고 히틀러의 오른팔이자 나치 선전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에게 직보할 정도로 거물이었다.

샤넬이 전쟁 중에도 파리의 초호화 호텔인 리츠 호텔 7층에 거주하고 경제적 여유를 누렸던 것도 폰 딩크라게의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리츠 호텔에는 괴벨스와 헤르만 괴링 등 나치 수뇌부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1941년 8월 샤넬은 압베어의 지시를 받고 스페인에서 현지 첩보원 모집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버건은 샤넬이 “맹렬한 반 유대주의자”이기는 했으나 당시 독일군 수용소에 있는 한 친척의 석방을 위해서 스파이 활동을 한 사정도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1944년 샤넬은 폰 딩크라게와 압베어로부터 받은 돈을 은닉해 뒀던 스페인 마드리드로 돌아가려 했으나 가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자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다가 파리로 되돌아 왔다.

샤넬은 생전에 나치 부역 소문을 전면 부인했으며, 1971년 사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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