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기대는 안 해요. 우리 죽기 전까지 보상해줄 리 없어요.”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의 추도 집회가 열린 23일 오후 1시께 일본 도쿄의 지도리가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원.
소련의 스탈린이 북만주 등지에서 붙잡힌 일본·조선·중국인을 시베리아로 끌고 가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1945년 8월23일을 기억하자며 2003년부터 매년 개최된 이 행사에 한국인 피해자 모임인 ‘시베리아삭풍회’의 이재섭(85) 회장과 원봉재(86) 이사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는 일본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 30여명 외에도 오쓰카 고헤이(大塚耕平) 후생노동성 부대신과 하쿠 신쿤(白眞勳) 참의원 의원 등 정부·국회 관계자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 또한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들이 대거 참석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 지난해 6월 일본인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 7만여명에게 보상금 성격의 특별급부금 25만∼150만엔을 주는 ‘전후 강제억류자 특별조치법’을 만든 점과 관련이 있다.
전쟁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철저하게 부정했던 일본이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를 대상으로 사실상 전후 보상을 시작한 것. 하지만 한국과 대만 피해자는 여기서도 제외됐다.
그렇다고 일본인 피해자보다 덜 억울하거나 덜 고생한 것은 아니었다.
이씨와 원씨가 징집돼 만주에 도착한 것은 해방을 일주일 가량 앞둔 1945년 8월9일이었다. 전투 한번 치르지 않은 채 광복을 맞은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기대했지만, 전쟁 포로로 간주돼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이후 3년가량 강제 노역을 했다.
조선인 억류자 3천500여명 중 2천300여명이 귀국길에 올랐고, 이중 500명은 한국으로 향했다. 일제와 소련에 의해 개인의 삶을 파괴당한 이들이 귀국해서 만든 시베리아삭풍회는 그동안 줄기차게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고 사죄와 보상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됐다. 초기 60여명이던 회원은 차츰 세상을 떠나고 이제 10여명이 남았을 뿐이다.
거동조차 불편한 이씨와 원씨가 다시 도쿄를 찾은 것은 일본이 법을 개정해 한국인과 대만·중국인 피해자에게도 보상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일본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까지 버리지는 못한 것이다.
이씨는 이날 추도사에서 “지난해 특별조치법에서 제외된 한국, 대만, 중국인에 대한 보상 문제와 시베리아에 남은 이들의 유골 수습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일본 정부와 정계 관계자들도 이 호소를 듣긴 했지만, 한국·중국인 피해자 문제를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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