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아르헨티나 빈민의 친구

교황 프란치스코, 아르헨티나 빈민의 친구

입력 2013-03-23 00:00
수정 2013-03-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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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산체스는 바티칸에서 열린 화려하고 장엄한 교황 즉위식 때 다른 귀빈들과 함께 교황의 바로 뒤에 서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19일(현지시간)이었고 22일에는 당장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져 유용한 것을 찾아 모으는 자신의 직업을 위해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산체스는 아르헨티나의 가장 낮은 직업 중의 하나인 3천명으로 구성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쓰레기 재생 협동조합의 지도자이다.

하지만, 그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아르헨티나 추기경이 교황이 되기 전에 그와 친구였다.

산체스는 AFP에 “교황은 노예 같은 근로조건과 성적 수탈 등에 반대하는 대중 설교를 하면서 항상 우리와 함께 했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었다”고 말했다. 산체스는 교사인 호세 델 코랄과 함께 교황 즉위식 축하 아르헨티나 대표단의 일원으로 초청받았다.

그는 “교황은 나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바티칸으로 초청했지만, 우리 조합원 중 누구라도 (바티칸에) 올 수 있는 관계”라며 “교황은 우리와 인사를 나누면서 ‘계속 싸워나가라’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세와 나는 교황 뒤를 따라 커다란 홀로 걸어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세계 각국의 대통령과 왕들이 있었고 우리는 마치 교황의 가족인 것처럼 함께 있었다”고 회상했다. 두 사람은 교황 즉위식 때 귀빈석에 자리가 배정됐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이들의 관계가 이처럼 돈독해진 것은 아르헨티나 경제가 갑자기 무너진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정부 지출을 급격히 줄였고 이에 따른 항의와 파업이 계속됐다. 은행에서 대규모 인출사태가 빚어지자 정부는 예금 계좌를 동결하고 최소한의 자금만 찾아가는 것을 허용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1년 말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성난 군중이 도로 여러 곳을 차단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규모 집회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급기야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기고 헬리콥터로 대통령궁을 탈출해야 했다. 실업률은 급격히 상승했고 빈곤층 비율은 57%까지 올라가 아직도 이를 회복하고 있다.

그 당시 초등학교만 나온 산체스는 트럭 운전사로 일하고 있었으나 회사가 파산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쓰레기를 뒤지는 일을 하게 됐다. 당시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은 쓰레기통이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목재, 금속, 플라스틱, 종이, 종이상자 등 재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냈다.

일부 쓰레기 수거업자들은 종종 말들이 끄는 마차를 이용해 쓰레기 컨테이너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등 난장판을 만들어 놓아 도시 중산층 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제위기 초기에는 개인적으로 일했으나 몇 해가 지나가면서 협동조합의 형태로 변모하게 됐다. 현재 이들은 재생 가능한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을 함께하고 있고 고정적인 거래처도 두고 있다. 이들은 또 거래처에서 정당한 가격으로 사줄 것을 요구하는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산체스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미사를 할 때 (부유층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도록 하는 노동력 착취, 매춘, 아동 구걸 등의 형태로 이미 노예상태로 전락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을 하곤 했다”며 “우리는 쓰레기 재생 전문가인 새 교황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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