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기밀 유출 수사’ 명분…AP “전례없는 언론자유 침해”
미국 정부가 테러관련 기밀의 내부 유출자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AP통신의 전화통화 기록을 대거 압수해 은밀하게 조사한 것으로 드러났다.이에 따라 AP 측이 언론 자유에 대한 전례 없는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공화당 등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파들도 이를 문제 삼고 나서 논란이 증폭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일간지는 연방검찰이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AP 편집국과 소속 기자들이 쓰는 전화 회선 20여개의 2개월치 사용기록을 압수해 조사하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압수 자료는 AP 뉴욕 본사와 워싱턴,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사무실의 직통전화와 기자들의 업무·개인 전화에 대해 수신·발신 내용과 통화시간 등을 기록한 것이다. AP는 100명 이상의 기자들이 압수대상 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번 압수는 작년 5월7일 자 ‘예멘테러 기도’ 기사가 촉발한 것으로 AP는 추정했다. 기사는 대미(對美) 테러 위협이 없다는 당시 미국 정부의 발표와 반대로 알 카에다 예멘 지부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1주년을 기념해 미국행 여객기에 폭탄테러를 시도했고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를 저지했다는 사실을 밝혀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사법당국은 보도를 ‘CIA 작전 기밀이 위험하게 유출된 사례’로 보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AP는 예멘 기사에 관여한 에디터와 기자들의 전화통화 기록도 이번 압수 대상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AP는 이번 압수를 두고 “이례적으로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게리 프루잇 AP사장은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정부가 언론사의 비밀 취재원이나 취재활동 내용을 알 권리가 없다”며 압수한 통화기록의 반환과 사본 파기를 요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진보적 이미지와 달리 예전에도 안보를 이유로 언론 보도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익적 목적 등으로 국가 기밀을 외부에 알린 인사를 수사·기소한 사례가 6번으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다.
작년 1월에는 테러 용의자에 대한 가혹신문 사실을 뉴욕타임스 등에 폭로한 전 CIA 간부가 기밀 유출 혐의로 법정에 섰고, 2010년에도 국가안보국(NSA)의 예산 과잉 지출 문제를 언론에 지적한 전 NSA 직원이 기소됐다.
이번 파문은 최근 보수단체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으로 비판을 받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또 다른 정치적 타격을 줄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했다.
미 하원의 감시 정부개혁위원회 위원장인 대럴 아이서 의원(공화·캘리포니아)은 “수사 당국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기 전 다른 대안을 찾아볼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한 민주당 전략분석가도 “AP 통화기록 압수 사건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언론 이미지가 어떻게 될지가 결정된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은 통화기록 압수가 언론과 내부 고발자 모두를 압박하는 조치라며 “홀더 법무부 장관이 재발 방지책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악관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언론보도 외에는 통화기록 압수에 대해 모른다”며 “수사는 법무부가 독립적으로 맡는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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