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표심에 ‘호소력’…대선 때마다 되풀이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너도 나도 ‘중국 때리기’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현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을 상대로 확실한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데다 유권자들의 표심에 효과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정치적 소재’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시기적으로 다음 달 하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있고 중국 경제가 극도의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어 주자들로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보일 수 있는 매력적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화끈한 주장’을 펴고 있는 대선주자는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다.
그는 최근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 주석의 방미를 취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워커 주지사는 중국의 사이버 공격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력 강화 등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기개’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인 마르코 루비오는 수위를 한 단계 낮춰 시 주석 방미의 격(格)을 ‘국빈방문’에서 ‘실무방문’으로 격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비오 의원은 28일(현지시간) 사우스 캐롤라니아주 찰스턴에서 열린 유세에서 “독재적 통치자(시 주석을 지칭)에게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중국의 군사적 패권확장에 맞서 미국의 역내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고 자유 무역과 인권을 고리로 중국 정부를 압박하라고 강조했다.
루비오 의원은 특히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對) 중국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내가 공화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면 힐러리가 외교정책에 관해 나를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며 “나는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특히 중국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취할 것을 집요하게 촉구해왔다”고 말했다.
사실 중국 때리기의 원조는 특유의 독설을 자랑하는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출마 직후부터 1999년 이후 중국에 빼앗긴 일자리 200만개를 다시 되찾아오겠다고 수차례 공약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미국의 경제가 너무 늦기 전에 중국과 ‘결별’(uncoupling)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차기 대통령은 중국의 경제, 멕시코의 경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이 같은 중국 때리기는 다소 식상하다는게 워싱턴 정가의 대체적 반응들이다. 정당과 관계없이 과거 후보시절 중국을 비난했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태도를 바꾼 경우가 수두룩한 탓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대 중국 국교정상화 작업을 비난하면서 대만과의 국교를 복원하고 첨단 전투기도 판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정부의 폭압적 진압을 거론하며 중국 지도자들을 “베이징의 도살자들”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집권 후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해주고 영구적 교역 정상화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중국을 끌어안은 클린턴 행정부를 비난했지만 9·11 사태가 터진 뒤로는 역시 대 중국 포용정책으로 돌아섰다.
2008년 대선 때 중국의 환율조작 행태를 강력히 비난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 후반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환율조작 문제로 중국을 제재하지 않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중국 때리기’가 갈수록 교류와 협력의 폭이 커지는 미·중 관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정치논리’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크다.
전문가들은 양국이 지난해 한 해에만 5천920억 달러(한화 697조 원) 규모의 재화와 서비스를 교역한데다 중국이 미국의 세 번째 수출시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이든 중국으로부터 나온다”(everything comes from China)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국 수입품의 대부분을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음은 오래된 얘기다.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담당 연구원은 “만일 두 나라 사이에 해결해야할 큰 문제가 있다면 정상들이 대면하지 않고 해결할 방도가 있느냐”며 “시 주석의 방미를 취소하라는 것은 외교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양국관계를 가장 잘 관리하는 방법은 지도자들의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매번 대선때마다 중국 때리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그만큼 미국 유권자들에게 먹혀드는 이슈이기 때문이라는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장기 침체를 겪어온 유권자들 사이에서 중국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큰데다 경제활동의 주축을 이루는 노사 모두 중국을 불편한 상대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 기업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는 “후보들로서는 극단적으로 나가는게 확실히 박수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풀이했다.
당장은 높은 경선 열기를 보이는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민주당 주자들도 조만간 중국 때리기 행렬에 가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일각에서는 유권자들의 잠재의식 속에 19세기 ‘황색공포’(Yellow Peril·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현상)처럼 중국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감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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