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통했나?…유네스코, 日신청 기록유산중 ‘정치사안’ 심사 제외

압박통했나?…유네스코, 日신청 기록유산중 ‘정치사안’ 심사 제외

입력 2017-06-27 11:04
수정 2017-06-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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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 제안자·중국침략 ‘퉁저우사건’·티베트 학살 자료 등 심사 제외 통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일본이 신청한 세계기록유산 후보 중 일부 ‘정치적 사안’을 심사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네스코는 “기록유산은 보존이 목적이며 역사적 판단이나 해석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일본이 신청한 후보 중 일부 “정치적 안건”을 심사대상에서 배제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2015년 난징(南京)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기록유산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며 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일본이 분담금 지급을 미루며 압박하자 유네스코는 기록유산 선정방법 수정을 추진해 왔다. 일본이 신청한 기록유산 후보 중 일부 ‘정치적 안건’에 대해 심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이런 제도개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최근 일본이 신청한 기록유산 후보 중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 헌법 9조의 처음 제안자가 시데하라 기쥬로(幣原喜重?) 전 일본 총리라는 자료, 일본의 중국 침략 빌미가 된 퉁저우(通州)사건 관련 자료, 티베트 학살 관련 자료 등도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신청자들에게 통보했다.

헌법 9조 관련 자료는 시데하라 총리의 비서였던 히라노 사부로(平野三郞) 전 중의원 의원이 총리에게서 청취한 문서와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미 상원위원회 증언기록 등으로 일본과 미국 시민단체 등이 작년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일본 헌법 9조 제안자는 맥아더 사령관이라는 설이 우세하지만, 시민단체 등이 신청한 문서에 따르면 시데하라 전 총리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력불보유를 포함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돼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은 “헌법 9조가 일본 패전후 연합군 총사령부의 강요로 만들어졌다”며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록유산 등재 공동신청자인 작가 아라이 준에 따르면 유네스코 사무국은 지난 4월 관계기관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요청해 왔으며 “기록유산은 정치적 당파성이 있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전제, “정치적 논의에 관한 입장을 선언하기 위해 등록신청을 이용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사무국은 이 사안이 “현재 일본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심사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일본은 위안부를 규칙대로 바르게 대했다고 주장하는 자료(일본과 미국 시민단체가 신청)와 퉁저우사건, 티베트 학살 관련 자료(일본 및 티베트 관계자가 신청) 등도 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퉁저우사건과 티베트 학살 관련 자료등재 공동신청자의 한 명인 후지오카 노부카쓰 다쿠쇼쿠(拓殖)대학 객원교수에게도 유네스코로부터 “특정 역사관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등록은 적절치 않다”는 통보가 왔다. 후지오카는 이에 대해 “역사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권침해 기록”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일 3국 시민단체도 공동으로 옛 일본군과 연합군의 공문서와 재판기록, 위안부 증언 등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했다. 신청에 참여한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도쿄 소재)” 사무국장은 “함께 신청한 단체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은 “역사적 중요성”과 “진정성” 등을 기준으로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자문위원회가 등록 가부를 심의하며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심의는 2년에 한 번이며 올해는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은 2015년 난징(南京)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심사과정에서 이해 당사국이 반론할 기회조차 없었다며 기록유산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중·일 시민단체 등이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한 후, 그동안 매년 내던 분담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연말이 돼서야 38억5천만 엔(약 387억 원)을 내는 것으로 방침을 바꾼 바 있다.

당시에도 난징대학살 자료등재에 반발하면서 동시에 위안부 자료심사와 등재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었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분담금 지급을 늦추고 있다면 치졸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4일 국제자문위원회(IAC)로부터 견해 차이가 있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에 대해 향후 당사국 간 사전협의를 요구하는 내용의 심사제도 중간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은 올해 약 35억 엔을 분담금으로 내야 하지만 외무성 관계자는 “심사제도 변경을 지켜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분담금 납부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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