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볼라’로 확인된 국제도시 뉴욕의 배타성

‘피어볼라’로 확인된 국제도시 뉴욕의 배타성

입력 2014-10-31 00:00
수정 2014-10-3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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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의 ‘ㅇ’ 만 나와도 유난 떨 정도

‘피어볼라’(에볼라 공포) 때문에 미국 최대 국제도시라는 뉴욕의 이미지가 많이 깎였다.

뉴욕 시와 보건 당국이 에볼라 감염자 크레이그 스펜서의 확실한 치료와 에볼라 확산 방지를 약속했지만, 정작 시민은 연일 ‘과학’을 불신하고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첫 번째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고 그를 치료한 간호사 2명마저 연쇄 감염된 탓에 한동안 ‘피어볼라’에 압도된 텍사스 주 댈러스 시 주민들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넓은 지역에 퍼져 사는 댈러스 주민과 좁은 지역에 밀집한 뉴욕 시민의 에볼라 체감 공포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뉴욕 시민의 반응은 에볼라의 ‘ㅇ’ 만 나와도 유난을 떨 정도라는 데 큰 이견은 없다.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스펜서를 치료하는 벨뷰 병원 직원들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당한 수모를 30일 소개했다.

에볼라 감염자를 직접 치료하지 않아도 벨뷰 병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이들은 배척을 받았다.

40대 중반 여성 마이나 마르티네스는 6년째 단골로 출입한 미용실에서 최근 벨뷰 병원에 취직했다고 말했다가 머리를 손질하던 미용사에게서 다른 미용사를 찾아보라고 외면당하는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부업을 물색하던 벨뷰 병원 간호사들은 소속을 밝히면 문전박대를 당했고, 어떤 보육원은 벨뷰 병원 간호사의 자녀를 받지 않겠다고도 했다.

일반인보다 보건 상식을 많이 쌓은 벨뷰 병원 내 의료진 사이에서도 황당한 차별이 이뤄진다.

특별 격리 시설에서 스펜서를 돌보는 간호사들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 간호사들이 자신들을 피하려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이 “에볼라 퇴치에 나선 간호사들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함에도 벨뷰 병원 소속 간호사를 도리어 차별하는 사태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네이트 링크 벨뷰 병원장은 “이러한 차별은 우리 지역 사회에 퍼진 비이성적인 공포와 연관이 있다”며 시민의 이성 회복을 촉구했다.

에볼라 음성 판정을 받고 27일 퇴원한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와 한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들의 행동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트럭을 모는 40대 중반 남성 리처드 터커는 이 아이가 에볼라 양성 판정을 받았다면 이사하려고 작정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에볼라가 무섭기도 하지만 보건 당국이 아파트 주민에게 격리 조처를 내리면 당장 생업 중단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전을 옮기려 했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에게 마스크를 쓰게 하고, 최대한 다른 이와 접촉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부모들도 늘었다.

아파트 주민인 50대 중반 여성 클라우디트 린제이는 1980년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가 발병하면서 뉴욕 브루클린에 살던 아이티 출신 이웃이 집단 공격을 당하던 때를 떠올리며 “당시처럼 에볼라를 이유로 아프리카 사람들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에볼라에 대한 공포나 히스테리가 사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보건 당국도 에볼라 환자의 체액 또는 피부를 접촉할 때에만 감염된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에볼라 숙주=아프리카 출신인’이라는 그릇된 고정관념과 공기 중 호흡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의학 상식으로 형성된 뉴욕 시민의 ‘피어볼라’는 뉴욕을 점점 배타적인 도시로 내몰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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