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지도부, 부결시 ‘그렉시트’가능성·유럽통합 손상 우려
그리스 국민투표를 지켜보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시각은 냉정하다.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으려면 채권단의 제안에 찬성해야 하고 찬성 이후에도 험난한 협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가 국민에게 채권단의 제안에 반대할 것을 요청하면서 부결될 경우 채권단과 추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유로존은 5일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채권단 제안이 부결되면 그리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파국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추가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찬성표를 던질 것을 독려하고 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은 채권단의 긴축 제의를 거부하면 덜 고통스러운 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스 정부의 주장은 그리스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국민투표에서 반대 결과가 나올 경우 그리스 정부의 협상력은 약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3일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에 상관없이 그리스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며 가혹한 재정적 조치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국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채권단과 협상이 머지않아 타결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앞서 이날 바루파키스 장관은 채권단과 합의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니라며 “(국민투표에서) 찬성 또는 반대가 나오더라도 합의는 머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데이셀블룸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이든 반대든,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의 구제금융 조건을 둘러싼 어려운 협상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스에 대해 강력한 긴축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은 더욱 단호하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독일 언론 회견에서 설혹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와도 전적으로 새로운 기반 위에서, 또한 악화한 경제환경 속에서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에 강한 불신을 보여온 그는 투표 대상이 된 국제채권단의 제안은 더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도 했다.
나아가 그리스 쪽이 투표 이후 새로운 구제금융 프로그램 협상을 다시 하자고 요청해야 하고, 그러면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검토를 거쳐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판단하고서 유로그룹이 새 협상을 승인하게 될 것이라고 절차를 전망했다.
마르틴 예거 독일 재무부 대변인은 그리스 금융 안정을 위해 3년 동안 519억 유로(64조 7천억 원)의 추가 자금과 부채 경감이 필요하다고 밝힌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대해 “부채 삭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이 아니다”라고 그리스 정부와 다르게 해석했다.
유로존이 비교적 원칙적이고 냉정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유럽연합(EU) 지도부는 내심 그리스 국민투표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반대 결과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이는 유로존과 EU 전체의 통합 과정에 커다란 손상을 가져올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U 지도부는 막판까지 그리스를 설득하기 위해 수정 제의을 내놓는 등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최종안을 거부하고 국민투표 강행으로 맞섰다.
융커 위원장은 그리스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스가 게임하듯 협상에 임하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유럽 지도자들은 그리스를 돕고 싶지만 그리스 국민이 거부하면 그렇게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U가 그리스 국민투표 찬성을 독려하고는 있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U 지도부가 성명과 회견 등을 통해 그리스 정부와 국민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외에 EU 차원의 조직적인 찬성투표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예산과 기구가 부족한 상태라고 EU 관리들이 전했다.
그리스에 주재 EU 대표부 관리들은 단지 융커 위원장의 발언을 대표부 웹사이트에 올리는 일 이외에는 국민투표 찬성 운동을 위해 거의 하는 일이 없다고 시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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