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결정장애 브렉시트 ‘쪼개기 투표’ 꼼수로 돌파구 모색

英, 결정장애 브렉시트 ‘쪼개기 투표’ 꼼수로 돌파구 모색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19-03-29 12:02
수정 2019-03-2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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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탈퇴협정 분리해 투표 시도...부결 되면 노딜 브렉시트로 가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반대하는 시민이 28일(현지시간) 런던 의사당 앞에서 영국 국기를 몸에 두른채 브렉시트 반대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 EPA 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반대하는 시민이 28일(현지시간) 런던 의사당 앞에서 영국 국기를 몸에 두른채 브렉시트 반대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 EPA 연합뉴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해법을 찾기 위해 8개 안을 놓고 끝장 투표를 했지만 모두 합의에 실패한 상황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 시한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으로 구성된 브렉시트 합의안을 절반으로 쪼개 EU 탈퇴협정만 먼저 통과시키려 하고 있으나 의회의 승인을 얻을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 않다는 평가다.

앤드리아 레드섬 영국 하원 원내총무는 28일(현지시간) 런던 의사당에서 29일 브렉시트 관련 결의안을 토론에 부친 뒤 표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이번 결의안은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 중 EU 탈퇴협정 승인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레드섬 원내총무는 만약 하원이 이를 승인하면 브렉시트 시기가 5월 22일로 연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관계 정치선언은 법적 구속력 없어

앞서 영국이 29일 예정됐던 브렉시트 시점을 6월 말까지 3개월 연기할 것을 요청하자 EU는 이번 주까지 영국 하원이 EU 탈퇴협정을 승인할 경우 유럽의회 선거 직전인 5월 22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하기로 수정 승인했다.

만약 아무런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4월 12일까지 영국이 ‘노 딜’ 브렉시트를 선택하거나,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한 뒤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하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과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 전환(이행)기간, 분담금 정산, 상대국 국민의 거주권리. 안전장치(backstop)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585쪽 분량의 ‘EU 탈퇴협정’에 합의한 데 이어, 자유무역지대 구축 등 미래관계 협상의 골자를 담은 26쪽 분량의 ‘미래관계 정치선언’에도 합의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EU 탈퇴협정에 비해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구속력이 없다.

영국은 지난해 제정한 EU 탈퇴법에서 의회의 통제권 강화를 위해 비준 동의 이전에 정부가 EU와의 협상 결과에 대해 하원 승인투표를 거치도록 했다.

메이 총리는 1월 중순과 이달 12일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 등 두 부분으로 이뤄진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투표에 부쳤지만 1차는 영국 의정 사상 정부 패배로는 사상 최대인 230표 차로, 2차는 149표 차로 부결됐다. 메이 총리는 당초 29일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을 제3 승인투표에 부칠 예정이었다.

보수당 내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 27일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에 참석해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사퇴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그동안 합의안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던 일부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이 메이 총리 지지로 돌아서면서 합의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그러나 존 버커우 하원의장이 다시 한번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으면 추가 승인투표를 불허하겠다고 밝히면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앞서 버커우 하원의장은 지난 20일 17세기 이후 적용되고 있는 의회 규약을 근거로 동일 회기 내에 실질적으로 같은 사안을 하원 투표에 상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메이 총리는 ‘미래관계 정치선언’은 제외하고 EU 탈퇴협정만 따로 떼어낸 뒤 우선 하원 표결에 부치는 방안을 내놨다. 버커우 하원의장은 이같은 정부 결의안이 ‘새로운 결의안’으로 기존에 자신이 강조했던 의회 규약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일단 탈퇴협정을 통과시킨 뒤 EU와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다시 논의하는 시간을 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당 “정부가 변칙을 시도하고 있다” 반발

그러나 제1야당인 노동당은 정부가 ‘변칙’을 시도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노동당은 영국이 EU와 어떤 미래관계를 구축할지에 관한 ‘미래관계 정치선언’ 없이 EU 탈퇴협정만 승인하는 것은 영국이 어디로 향할지 눈을 가린 채 브렉시트를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는 EU 탈퇴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카이 뉴스는 합의안 쪼개기가 과연 합법적인가를 두고도 문제가 제기됐다고 전했다.

EU 탈퇴법에 따르면 의회 비준동의를 위해서는 EU 탈퇴협정과 미래관계 정치선언이 모두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EU 탈퇴협정을 통과시켜 브렉시트 시기를 5월 22일까지 연장한 뒤 그 사이에 미래관계 정치선언을 추가로 표결에 부쳐 승인받거나, 아예 법을 고쳐 비준동의 절차를 생략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EU 탈퇴협정만으로도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 EU 탈퇴협정에는 그동안 의회 통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온 ‘안전장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안전장치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국경 통과 시 통행과 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양측이 미래관계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영국 전체를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이 영구히 ‘안전장치’에 갇힐 수 있고, 북아일랜드만 EU 상품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어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와 북아일랜드 연방주의 정당인 민주연합당(DUP)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DUP는 전날에도 안전장치를 지적하면서 메이 총리의 합의안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론자 중 최대 30여명 역시 계속해서 합의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EU 탈퇴협정 승인을 위한 투표 마저 부결될 경우 영국은 4월 12일 ‘노 딜’ 브렉시트를 하거나, 아니면 5월 유럽의회 선거 참여를 전제로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하는 방안을 택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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