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아랍의 봄’… ‘아랍의 겨울’로
이집트에서 지난 14일(현지시간) 발생한 시위대 유혈 진압 사태로 최소 6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집트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상태로 치닫고 있다. 2011년 중동 지역의 독재자들을 몰아냈던 ‘아랍의 봄’ 혁명이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켜 ‘아랍의 겨울’로 바뀌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 지지세력이 16일 군부의 시위대 무력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 ‘분노의 금요일’ 시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슬람계 정당과 시민단체들도 이집트 과도정부가 전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행 금지령을 발동한 조치에 항의할 예정이다.
앞서 이집트 보건부는 15일 군경과 시위대의 유혈 충돌 과정에서 638명이 숨지고 42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무슬림형제단이 사망자 2600명, 부상자 1만여명으로 집계한 것과 차이가 크다. 이집트 정부가 병원을 통해 접수된 시신만 공식 사망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국 BBC방송의 설명이다. 하지만 터키 아나톨리 통신에 따르면 이집트 군부는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 카이로 라바 광장에 마련된 야전병원에 불을 질러 안치된 시신들을 전소시키는 등의 반인륜적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인 마리아 페르세발 유엔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는 이집트 사태에 대한 긴급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이집트 정부와 무슬림형제단 양측 모두에 폭력을 종식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본부 소재지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고위급 외교관 회의를 열어 이집트에 원조 중단 등의 제재 조치를 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앞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집트 과도정부의 조치를 규탄한다”는 특별성명에도 드러나듯 국제사회의 단호하고도 합의된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이집트 군부의 행동을 묵인해 온 탓이다.
한편 아랍 민주화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이집트와 튀니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아랍의 겨울’로 빠져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독재자를 몰아내고 새 정부를 이끌어냈지만, 새 정부 역시 전임 정권과 다름없는 독재적 통치 방식으로 일관해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2013-08-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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