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올모스트, 메인’

[연극리뷰] ‘올모스트, 메인’

입력 2011-01-17 00:00
수정 2011-01-1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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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폭탄’ 유발하는 아홉 커플 사랑 이야기

막 오로라가 터져나오기 직전, 그러나 아직은 별빛만 가득한 금요일 밤 9시 공터에 놓여진 길다란 의자. 그 의자 한쪽 끝엔 토끼 같은 눈알을 하고 있는 여자, 지네트가 있다. 애타게 기다려 왔던 그 순간, 사랑고백을 받아낼 시간이다. 그런데 의자 반대쪽 끝 남자 피트, 심상치 않다. 큰 안경 쓰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얼뜨기 같다. 역시나다. 피트는 지네트에게 머저리 같은 얘기만 늘어놓고, 지네트는 조용히 사라진다. 마음이 애초에 없었다고 단정은 말길. 초면인 사람이나 윗사람에게 자기도 모르게 무례하게 구는 것을 두고,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너무 귀하게 여긴 거라는 프로이트의 심리분석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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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부 어느 한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아홉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연극 ‘올모스트, 메인’(이상우 연출, 극단 차이무·아츠 플레이 제작)은 이 추운 겨울, 연인이나 부부끼리 손 맞잡고 보기 좋은 작품이다. 지네트와 피트의 이야기를 중간중간 넣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살리되, 그 사이에 8가지 사랑이야기를 배치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를 떠올려도 좋다. 다만 ‘올모스트, 메인’은 연극답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얘기를 다룬다. 영화적 볼거리 때문에 총리나 록스타를 등장시켜 요란법석을 떠는 ‘러브 액추얼리’보다 훨씬 현실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데는 오히려 한 수 위다.

바람 피운 남편 때문에 돌처럼 굳어져버린 심장을 보자기에 싸서 다니는 글로리, 통증을 못 느끼는 선천적 질병을 앓고 있었으나 한 여자로 인해 문득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스티브, 퇴근 뒤 맥주 한 캔 마시며 얘기 나누다 문득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10년지기 랜디와 채드, 여성성이라곤 없어서 연애 따윈 꿈꿔본 적 없으나 남자친구의 기습 키스에 후끈 달아올라 ‘다음 코스’를 채근하는 론다 등. 말 그대로 생생한 캐릭터들이 나와 객석에 웃음 폭탄을 던진다.

이중옥, 공상아, 전혜진, 민성욱, 이봉련 등 여러 역을 번갈아 맡은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일품. 미국에선 2004년 초연 뒤 혹평받았으나 아마추어 극단에서 꾸준히 무대화되면서 브로드웨이에 진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그만큼 잔잔하면서도 훈훈하고 웃기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2만~3만원. (02)747-101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1-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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